남미 페루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민 온 공사판 인부 리처드 로메로는 한국 건축기술자들이 가지고 있는 바이닐 사이딩이라는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 그리고 한국기업에 들어가 열심히 경험을 쌓은 결과 자신의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고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지난 12일 뉴저지에서 개최된 채용박람회에는 한국과 미국의 50여개 유수기업이 참가하였고 1,000명가량의 취업 희망자들이 몰려들었다. 박람회는 1.5세와 2세는 물론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한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현장에서 102명이 채용되기도 했다.
한국어의 실리는 이와 같이 한 개인이나 회사, 어떤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의 국력 신장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그 실용성이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다. 올해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561년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은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갈수록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인간에게 언어가 있어도 글자가 없다면 그 역사는 실체가 없는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 것이 아닌 남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비록 긴 세월이 흘러도 의미 없는 시간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한자를 사용하거나 알파벳을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 민족이 아무리 우수하고 잘 살아도 중국이나 서양의 문화권에 속한 국가로 인식될 것이며 민족적 자긍심이나 정체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은 백성 모두가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기 위해 군왕이 직접 창제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사랑이 담긴 나라 글자이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이며 문자 역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다. 한국 사람은 한글의 뛰어난 효능 덕분에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문맹률 0%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은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컴퓨터에서 한글의 업무 능력은 한자나 일본어에 비해 7배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국어의 우수성은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가 훈민정음을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지난 9월27일 스위스 제네바의 총회에서 세계 지식재산권기구는 국제특허협력조약의 국제 공개어로 한국어를 183개국 전체가 만장일치로 공식 채택한 것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사람의 사상과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글이다. 글은 역사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곳 이민사회의 삶과 문화도 결국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와 한글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고 또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반세기에 가까운 이민 역사를 가진 한인 커뮤니티에 한국 문학의 창달을 위하여 개인 또는 단체 차원의 후원기관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의 책임 여부를 떠나 한인사회의 의식수준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얼마 전만 해도 일본인을 ‘이코노믹 애니멀’이라고 깔보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눈요기에 불과한 각종 축제나 일과성 행사를 위하여 많은 돈을 쓰면서도 막상 한인 동포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1평짜리 문화공간조차 마련치 못함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언젠가는 누가 이 일을 시작하리라 본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이민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부각될 것이다. 세종대왕이 청사에 남을 훈민정음을 만들고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겨준 것처럼 한국어의 세계화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세계인이 인정하는 한글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며 무지한 사람일수록 좋은 우리글이 있는데도 다른 나라 글을 선호한다든가 한글을 아무렇게나 표기하고 잡탕으로 사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심지어 한글을 배우면 주류사회에서 뒤진다는 그릇된 생각마저 가지고 있다.
미국 땅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고 우리의 뿌리와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의 유산인 한글을 소중히 생각하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조만연 /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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