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인기가 말이 아니다. 그 부시와 정치적으로 대칭점에 있는 게 민주당 다수의 의회다. 의회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는 그러면. 더 말이 아니다. 미국인의 18%만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 76%는 부정적 입장이다.
미국의 장래를 보는 시각도 상당히 비관적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68%의 미국인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나가는 거시적 방향은 그렇다고 치고 ‘나 개인의 장래’는 어떤가. 이 부문에서는 반대로 극히 낙관적이다. 현 상태에 대해 만족한다는 미국인이 과반수를 넘는다. 3분의2 정도의 미국인은 장래에 대해서도 희망적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대통령이, 의회가 매도된다. 이들의 오도로 미국이 잘못 가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그런데 이야기가 ‘내 주변으로’ 국한되면 온통 장밋빛으로 변하니.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마이클 메드베드란 한 논객은 그 이유를 이렇게 풀이했다. 미국인은 주당 30시간 이상을 TV 앞에 앉아 있다. 방송 언론을 주원인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의 TV는 ‘나쁜 뉴스’의 공장이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TV로서는 아주 좋은 뉴스다. 무엇보다도 그림이 돼서다. 하여튼 자극적어야 한다. 대형사고, 범죄, 테러리즘. 뭐가 또 있나. 이라크다. 뉴스만이 아니다. 드라마도, 쇼도 비슷한 흐름이어야 한다. 그래야 세일이 되고 시청률이 오르니까.
100% 영상매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갈 데까지 간 ‘이미지의 정치’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TV가 보여주는 이 부정 일색의 선동성 ‘유사현실’에서 사람들은 혼란해 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이처럼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TV는 현실을 얼마든지 굴절시킬 수 있다. TV가 일방적으로 취사선택한 화면과 말(narration)을 끊임없이 접하면서 그 TV 속 세상을 사람들은 진짜 세상으로 착각한다. 그걸 말하는 것이다.
‘선전은 어디까지 현실을 대체할 수 있을까’-미국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과 관련해 한국의 한 노 석학이 던진 질문이다.
세계화 개방화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런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민주주의와 담을 쌓고 인민을 굶겨 죽이는 김일성-정일 세습왕조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믿고 있는지, 그 선전의 위력과 이성의 무력을 새삼 한탄하면서다.
TV 때문에. 이렇게 말하기에는 한국의 경우는 너무 단순하다. 무엇이 그런 기이한 일을 가능케 했나. ‘문화권력’이란 말이 그 답이 아닐까. TV까지 장악한 한국형 ‘문화권력’ 말이다.
한국의 문화권력은 좌파가 장악했다. 오래 전부터 나온 말이다. 80년대에 이미 재야의 문화권력은 주류로 떠올랐다. 반(反)미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단 극복을 노래하지 않으면 축에 끼지 못했다. 그 가운데 북한체제는 미화된다. 학계, 언론계, 문화계에서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이들이 정치권력과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권 출범 때부터다. 노무현 정권은 무리수를 두듯 파행인사를 하면서 예술단체에서, 출판, 영화 대중음악, TV, 그리고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 인프라를 강점하기에 이른다.
90%의 문화권력이 좌파에 의해 장악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된 것이다. ‘한 세대에 이르는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 열린 우리당 전성시절 공공연히 나돌던 말이었다. 문화권력을 장악한 자신감의 발로였다.
TV권력, 문화권력 얘기가 길어졌다. 그건 다름이 아니다. 본선 문턱에 들어선 한국의 대선이 또 한 차례의 이미지 대선이 되어가는 기미가 역력해서다. ‘가진 자 20%’와 ‘못가진 자 80%’를 강조한다. 서민경제에, 평화대통령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좌파와 우파, 편 가르기의 시작이다.
거기다가 또 한 차례 대한민국 대선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야당 대선후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고, 검찰이 대선후보를 소환한 것이다. 이미지 죽이기 작전 같다.
놀랄 일은 아니다. 예상됐던 사태이기 때문이다. 왜 문화권력 장악에 그동안 그토록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나. 이런 일에 대비해서였을 터이니까. 그러니 이제 그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문제는 문화권력을 총동원한 이미지 작전이 과연 먹힐까 하는 것이다. 문화권력은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할 때 그 존재가치를 잃는다. 때문에 하는 말이다. ‘선전은 어디까지 현실을 대체할 수 있나’-한국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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