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500년간 상인은 사회적으로 가장 천시 받는 계급이었다. 제일 위는 글을 읽는 선비, 그 아래는 농산물을 기르는 농부, 그 다음이 농기구를 만드는 공인, 밑바닥이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이었다. ‘이익을 좇는 무리들’이란 뜻의 ‘모리배’가 갖는 뉘앙스를 살펴보면 이들이 어떤 대접을 받아왔을지 짐작할 수 있다.
상인을 우습게 안 것은 물론 조선만은 아니었다. 동양권의 종주국인 중국도, 서양 문명의 기초를 놓은 그리스와 로마, 히브리인들도 상인들을 멸시했다. 이들 사회의 중심 세력은 대지주 혹은 전사, 사제 계급이었고 장사꾼은 기생충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돈에 대한 사랑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성경 구절이 이들의 의식 구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함께 국제 무역이 활발해지고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서양에서 상공인의 지위는 일대 혁신을 맞게 된다. 사회 변두리 계층이던 이들이 사회의 주도세력이 된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펴낸 ‘국부론’을 통해 상인들의 활동 영역인 시장이 어째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인가를 파헤쳤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조차 상인(혹은 기업가)들은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중 대표적인 책은 1934년 매슈 조셉슨이 쓴 ‘강도 귀족들’(Robber Barons)이란 것이다. 그는 여기서 미국의 대표적인 재벌인 록펠러 등이 덤핑으로 경쟁자들을 제거한 후 담합과 독점으로 부당한 방법을 통해 부를 쌓았다며 이들을 중세 때 자기 성 앞을 지나가는 상인을 약탈하던 ‘강도 귀족’에 비유했다.
이런 재벌의 폐해를 막기 위해 시오도어 루즈벨트는 독점 금지법 등을 시행했으며 정부에 대한 기업 규제는 대공황과 함께 들어선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런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 케인즈의 이론으로 70년대 말까지 미국은 물론 공산권을 제외한 세계 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한다.
이 이론에 반기를 든 것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라는 인물이다. ‘가치의 주관주의’를 신봉하는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기수인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심화되면 결국 기업가들은 의욕을 잃고 근로자들은 국가의 노예(serf)로 전락하고 말 것으로 경고했다. 1940~50년대 당시 도그마에 정면 도전했던 그는 동료들의 극심한 비판으로 학계에서 발붙일 곳을 잃고 만다.
그 때 유일하게 그를 받아준 곳이 시카고 대학이었다. 그곳에는 조지 스티글러와 밀튼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자유 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시카고학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찬밥이었던 이 학파는 70년대 고실업과 고 인플레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출현과 함께 케인즈 이론이 힘을 잃으면서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1979년 영국의 대처, 1980년 레이건 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도 이들이다. 그 후 공산주의 몰락과 세계화의 확산은 이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확인시켜줬다. 스티글러와 프리드먼, 하이에크는 모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시카고 대학은 경제학에 관한 한 노벨상 제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9년 첫 번째 시상식이 열린 이래 40년 동안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했거나 가르친 사람 24명이 이 상을 받았다. 올해 경제학상은 불완전한 조건에서 시장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다룬 ‘메카니즘 디자인 이론’으로 90세로 역대 수상자중 최고령인 레오니드 허위츠와 로저 마이어슨, 에릭 매스킨 등 3명이 받았는데 이 중 마이어슨이 시카고 대학 교수다.
기업가는 비즈니스를 일으켜 부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마련하며 기술 혁신을 주도한다. 정부의 역할은 이들이 공정한 룰을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는데 그쳐야 한다. 기업가를 우대하는 사회는 발전하고 천시하는 사회는 퇴보한다. 이런 것들이 시카고학파의 중심 사상이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이런 진리를 깨닫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자유 시장 경제 지킴이 역할을 해온 시카고 대학의 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