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뉴욕가정상담소 카운셀러)
오늘의 부모 세대에겐 중고등학교 진학조차 사치였다. 반듯한 골목에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동네가 아니라면 교복 입은 청소년보다 그들을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더 많곤 했다. 그래서일까, 자녀 세대는 그런 아픔에서 철저히 보호받으며 자랐다. 대학 진학도 특권보다는 수순인 경우가 많다. 이민사회도 마찬가지다. 고국에서부터 부모의 경제력이 어떻게 자녀의 가능성을 뒷바침하는지 보고 자란 이민 1세대는 남의 땅에서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궂은 일 마다 않고 주야로 일했다. 이런 부모 심정을 아이가 이해하고 알아서 잘 자라주면 좋으련만, 대체로 양 부모가 돈벌이로 바쁜 가정의 자녀들은 자라나며 하나 둘 곪았던 문제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밤낮없이 자녀를 위해 일하던 부모 입장에선 참으로 난감하고 섭섭한 상황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사달라는대로 몸 아끼지 않고 사주었는데 무엇이 모자라 말썽이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시대를 막론하고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의식주의 결핍만 해결되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공식은 지나치게 단순한 사고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유층 자녀 집단도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 집단만큼 문제 행동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다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환경의 아이들이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문제가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실행한 연구결과들은 속속들이 부유층 자녀 집단이 나머지 집단에 비해 심각한 우울증, 불안장애, 약물남용의 3가지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이 모자란 것일까? 컬럼비아대학 상담심리학과 루터(Luthar)박사는 부유층 자녀들의 탈선 행동에 대한 다양한 이유 중 ‘부모와의 단절’을 한 가지로 꼽았다. 그는 부모와의 단절은 단순히 방과후 부모의 부재를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에게 심리적으로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지를 포함하기도 한다고 말한다.부모가 가치판단 전에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리라는 믿음, 어려움이 있을 때 부모에게 달려가면 언제든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어려움에 당면한 아이들을 탈선행동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에게 심리적으로도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체면과 겉으로 보이는 행동거지를 중시하는 한국문화에서는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아이들이 손가락질 받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부모 스스로 놀라기도 해 아이들을 야단부터 치게 마련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했을 때 이해와 지지를 받기보다는 야단과 질책을 받을까 두려워 정작 기댈 수 있는 어른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다. 가뜩이나 바빠 함께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없는데 큰일이 생겼다 하면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바람막이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더욱 큰 걱정거리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냐오냐 키울 수만은 없으니 부모 입장에서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지 않으면 아이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어려움을 겪는다.정답은 없다. 따뜻하게 타이르는 것과 야단을 치는 선은 아이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다르다. 그러기에 평소에 자녀의 행동과 사고에 관심을 갖고 아이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또 한가지 명심해야 할 사항은, 자녀를 야단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목적은 자녀를 ‘교육’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놀라고 당황한 부모의 마음이 야단을 치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인정하게 한 후 훈육하는 것이 자녀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부모 스스로 자신의 감정조절이 가능해야 자녀교육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경제적 풍요도 부모의 심리, 신체적 부재 앞에서는 힘없는 허울일 뿐이라는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자녀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녀가 경제적 의지만큼 심리적으로도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자녀를 위해 주야로 일하는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 자신이 당신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상처를 입은 기억으로 경제력을 키우는데만 매진하고 심리적 지지를 보내는 부모 역할을 잊는다면 그들은 형태만 바꾼 채 같은 어려움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오늘 자신의 원동력이 자녀를 위한 마음보다 과거 자신의 좌절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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