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방문기간에 워싱턴과 뉴욕 등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 사람들에게 그가 2000년 6월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을 때 김정일이 “통일 이전은 물론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DJ의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주한미군 문제에 관하여 그가 김정일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하는 ‘말’은 실제로 김정일이 했던 ‘말’을 자기 식으로 왜곡, 변조한 것에 불과하다. DJ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그 실례로 지난 8월 한 달 동안 북한의 ‘로동신문’이 무려 32회에 걸쳐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기사를 게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DJ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관하여 그가 들었다는 김정일의 ‘말’을 반복하여 거론했지만 2001년 8월4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김정일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의 회담에서 발표된 ‘모스크바 선언’은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 철수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서 미룰 수 없는 초미의 문제가 된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히고 있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DJ가 들었다는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김정일의 ‘말’과 그로부터 1년 뒤 모스크바에서 김정일이 푸틴에게 했다는 ‘말’은 정반대의 내용이다. DJ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2001년 8월29일자 국회 224회 회의록을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면 2000년 6월 DJ의 평양 방문 때 국가정보원장으로 수행했던 임동원씨의 증언이 있다.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적군으로서가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했다.” 즉 주한미군의 철수 대신에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을 요구한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DJ에게 했다는 말이 “무조건 주한미군이 남아 있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제시하는 이 같은 ‘전제조건’의 충족이 전제되어야 한다면 그 같이 변질된 주한미군이 남한 땅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김정일의 ‘전제조건’을 DJ가 거두절미한 채 “통일 이전은 물론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남아 있어도 좋다”라고 말한 것처럼 전한다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임동원씨의 증언 내용은 주한미군 계속 주둔 그 자체가 아니라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성격과 지위와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해 적군이 아니라 우호적 군대로 바뀌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지위에 변동이 생겼을 때 핵무장을 한 북한이 또 다른 6.25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현실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인 것이다.
6.25전쟁을 체험한 대한민국의 세대들이 한국의 청소년 세대에게 꼭 전수해 주어야 할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이 있다. 그것은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했기 때문에 6.25 전쟁이라는 처참했던 민족적 비극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한다면 그때 주한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다음 해에 일어난 북한의 6.25 남침은 방지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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