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재벌회장들을 영어로 체어맨(Chairman)이라는 부르는 이유는.
답: 평소에는 최고급 승용차 ‘체어맨’을 타고 다니다 법정에 출두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휠체어로 바꿔 타기 때문.
회사 돈을 빼돌렸거나 폭행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국의 재벌회장들에게 최근 잇달아 솜방망이 선고가 내려지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썰렁개그이다. 휠체어의 위력이 있기는 있는지 기소된 재벌회장들이 병색 완연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기대기만 하면 보통사람들은 언감생심 기대할 수 없는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다. 판사들의 눈에 휠체어에 기댄 재벌회장님들의 모습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가는 모양이다.
빗나간 아들 사랑 때문에 검은 장갑 끼고 직접 폭행에 나섰던 한 재벌회장님에게 내려진 집행유예 판결도 이런 소극의 하나이다. 휠체어를 탄 회장님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며칠 후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관들에게 뇌물을 전달했던 그룹 임원은 실형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됐다. 몸통은 풀려나고 대신 깃털이 차가운 감옥으로 간 것이다.
이런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실에 대해 한국의 일부 논객들은 “미국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실상은 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여배우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던 유명 음악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지난주 배심원 불일치 평결로 풀려났다. 무죄는 아니지만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4년전 자신의 집에서 사건이 발생한 직후 피를 묻힌 채 총을 들고 나와 자가용 운전사에게 “내가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던 스펙터는 법의 단죄를 교묘히 피해갔다. 운전사의 증언은 사실상의 범행 자백인데도 엄청난 부를 동원해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법의학자들까지 동원한 스펙터의 현란한 ‘법정 쇼’ 앞에서 ‘장삼이사’ 배심원들은 무너졌다.
“자동차든 보트든 아니면 변호팀이든 그것을 살 때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승차감은 한층 좋은 법”이라는 한 법률전문가의 비유는 법전 속에서는 인간이 평등한지 몰라도 돈 앞에서 법은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을 잘 꼬집고 있다. 스펙터 평결 불일치가 나온 후 CNN 같은 미국 언론들 웹사이트에는 독자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거의 예외 없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 성토와 개탄이었다. “만약 똑같은 상황에서 센트럴 LA 흑인이 기소됐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겠느냐”는 한 미국인의 지적은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사법 평등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은 의외로 깊다. 특히 화이트칼러 범죄에 대한 단죄에 불신이 깊어 “300달러를 훔치면 30년형이요 300억달러를 훔치면 단 3년”이라는 자조 섞인 유행어가 나돌기도 했다.
우리는 공정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완벽한 공정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계의 근본적 속성일지도 모른다. 링컨 대통령은 사법 정의에 대한 환상을 일찌감치 버렸던 사람이다. 그는 변호사 시절 이런 우화를 즐겨 인용했다.
“닭을 훔친 족제비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족제비의 변호사는 여우였다. 여우는 재판장 원숭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의뢰인이 닭을 훔치는 것을 봤다는 증인이 3명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증인을 12명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원숭이 재판장은 한참 고민한 후 ‘3대12이니 피고는 무죄’라고 선고했다.” 법률적 승패와 정의와 공정의 실현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링컨은 재판 경험을 통해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라는 이름의 소피스트와 논쟁을 벌였다. 논쟁중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법이란 무엇인가.” 트라시마코스가 대답했다. “법은 강자의 이익이다. 법은 또 거미줄과 같다. 작은 곤충들은 이 거미줄에 걸려들지만 큰 짐승들에게 거미줄은 아무 의미가 없다.”
노자는 “하늘의 그물은 넓고 높아 엉성한 듯 보이지만 인간의 죄는 결코 그 그물을 빠져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늘 그물’은 그럴지 몰라도 ‘법의 그물’은 그렇지 못하다. 촘촘한 듯 보이지만 작은 고기들만 걸려들 뿐 큰 고기는 다 빠져 나간다. 화가 날 일이지만 어쩌랴. 현실이 그런 것을. 노자의 가르침이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트라시마코스가 무덤에서 살아 나와 오늘날의 사법 현실을 본다면 이렇게 한마디 덧붙이지 않을까 싶다. “거봐. 딱 내가 말한 대로잖아.”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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