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송편이 담긴 그릇이 있다. 이것을 에워싸고 어린이들이 모여섰다. ‘먹고 싶지요. 마음대로 집어 먹어도 돼요’ 어린이들이 서로 얼굴을 본다. 한 어린이가 하얀 송편 하나를 집더니 먹기 시작한다. 또다른 어린이도 송편을 맛본다. 몇 어린이들도 흉내를 낸다. 그래도 끝까지 보고만 있는 어린이 몇 명이 남는다. 흰 송편은 다 없어졌지만 쑥송편은 그대로 남아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송편을 본 일도 없는 어린이가 있다. 본 일은 있어도 먹어본 일이 없는 어린이도 있다. 송편을 먹어 보았지만 쑥송편을 처음 보는 어린이도 있다. 전에 먹어본 송편 맛을 기억하고 그 맛을 즐기는 어린이가 있다. 그런가 하면 송편 맛은 별로 모르지만, 다시 맛보는 어린이도 있다. 끝까지 처음 맛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이도 있다.이 모든 것은 체험을 했느냐, 첫 체험이냐에 달려 있다. 우리 생활의 모든 행동은 체험을 통하여 익히게 된다. 학교 교육도 학생들에게 실제로 체험하면서 배우도록 교사가 유도한다. 지식과 이론은 실제로 체험하면서 확고하게 자기 것이 된다. 송편 한 가지만 보더라도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들의 가정 생활이 여실히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송편은 무엇인가. 일년 내내 먹어볼 수 있지만, 송편은 추석의 특별 음식이다. 추석은 한민족의 명절 중의 명절이다. 이 날을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그 어원은 ‘큰 갚음’이란 뜻이라고 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갚나. 조상 어른과 자연에 대한 감사이고, 그 갚음을 하는 날인 것이다. 그래서 추석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선조들에게 햇밥과 햇과일을 올리는 것이다. 송편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큰 은혜를 어찌 갚겠는가만.
왜 한국의 고속도로는 추석을 전후하여 차로 꽉 차는가. 명덜은 다 같이 모여야 명절이어서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다. 함께 모여서 조상어른과 자연에 감사하는 것이다. 명절은 한 가족의 행사가 아닌, 한민족의 행사이기 때문에 그 뜻이 더욱 크다. 추석에 민족혼이 담겨있다.
그런데 미국내의 추석은 어떤가. 그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날짜 조차 희미하다. 미국내 발행 달력에는 음력 날짜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그 날짜를 안다고 하더라도 다 같이, 여럿이 즐기지 않기 때문에 멀쑥해질 수 밖에 없다. 큰 도시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펼쳐 그 면목을 살린다. 그러나 중소도시나 시골에서는 쓸쓸한 가족 행사가 되어 버린다.
흔히 추석은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같다고 한다. 그 뜻이 같다고 하기보다는 비슷하다. 미국 개척민들이 신과 자연에 바친 감사의 날이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의 특별 음식은 터키이다. 학교에서도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여기에 관한 학습이 이루어진다. 이 때 보면 동양 학생들은 활발
하게 학습에 참가하지 못한다. 왜인가. 그들의 가정에서 풍부한 체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추석이나 추수감사절에 엉거주춤 할 수 밖에 없는 자세가 되어버린다. 가정이나 학교가 도와야 한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뜻을 살리고 다 함께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대신, 가족이 모여서 추도모임을 가질 수 있다. 송편을 빚어서 이웃과 나누며 즐길 수도 있다. 송편을 사올 수도 있다.
추수감사절에는 미국 친구들을 초대하여 터키 맛을 즐길 수 있다. 이 날 한국음식을 한 두가지 곁들이면 특색있는 추수감사절이 될게 아닌가.
추석과 추수감사절은 두 가지를 다 지킬 수 있는 명절이다. 송편과 터키는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혼자’ 보다 ‘여럿이’ 더 풍요롭고, 재미있고, 다채롭고, 힘이 세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좋은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좁은 마음을 가지거나 융통성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경제와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생각만 있으면 길이 있게 마련이다. 한 나라의 명절은 생활문화의 집합체이다. 여러 나라의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충분히 즐기자.
우리 모두가 송편과 터키를 양손에 들고, 한 입씩 번갈아 먹고 있는 상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즐거워진다. 하늘은 더 파래지고, 공기는 더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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