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아 아, 가을인가 봐/ 물동이에 떨어진 나뭇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 이 노래는 가곡을 잘 모르는 사람도 가을이 오면 흥얼거리는 김수경 작시, 나운영 작곡의 한국가곡이다. 같은 곡이라고 해도 테너가 부르는 것 보다 저음의 바리톤이 더 어울리는 가을이 어느 새 다가왔다.
얼마전 뉴욕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에 보니 한국의 관광과 가을풍경에 대해 자세히 소개됐다. 아시아 10여 개국과 함께 한국의 부채춤 사진을 칼라로 게재한 이날 기사는 “이 아담한 나라는 벼가 익어가는 빛나는 들녘과 톱니처럼 뾰족한 아름다운 산봉우리, 매혹적인 섬, 황금물결 같은 해변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가을의 기쁨에 충만해 있다“고 하면서 첨단 IT와 전통이 아우러진 나라로 한국을 소개했다. 그리고 설악산의 가을과 제주도의 해녀도 소개했다.
가을의 정취라면 여기 뉴욕의 가을도 어느 지역에 뒤지지 않게 아름답다.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뉴욕의 가을(Autumn of New York)’도 보면 센추럴 파크의 물든 나뭇잎과 무수하게 떨어진 그 낙엽의 정취가 너무도 아름다워 황홀할 지경이다. 아니 벌써 그런 가을이 찾아왔는가? 해놓은 것도 하나 없는데, 아이 아이 세월만 빠르게 간다. 올해는 더위가 늦게 오더니 역시 늦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가을 햇볕은 들판의 곡식을 여물게 하고 과일에 단 맛을 배게 한다. 늦더위를 보더라도 올 가을은 길 것 같다. 그래서 센추럴 팍의 단풍은 오랫동안 아름답게 물들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9월의 더위를 ‘인디안 서머(Indian summer)’라고 하는데 같은 이름의 한국영화가 있다. 여자 사형수와 국선 변호사 사이에 피어난 때늦은 비련을 그린 슬픈 영화이다. 가을을 맞아 실컷 울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슬픈 사랑을 하지 않더라도 가을이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계절과 관련된 언어들, 시와 노래를 생각해 보자. 구르몽 “시몽 너는 네가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 이브 몽땅의 샹송 ‘고엽(Autumn Leaves)’ 우리나라 노래로는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이외에도 ‘가을비 우산 속에‘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가을노래‘ 등 가을을 주제로 한 단어와 노래들은 즐비하다.
가수 배호가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엘비스 플레스리의 팝송을 번안한 이 곡은 가을을 더 외롭고 처절하게 만든다. 누가 그러는데 슬픈 노래를 부르면 인생이 슬퍼진다고 한다. 그러나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 새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아직 절망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꿈을 키워야 한다.
가을은 사실 슬픈 계절이 아니다. 낙엽이 아니라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밤나무, 감나무 등 과실나무들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풍속은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자녀들 결혼을 위한 혼수를 준비하고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 긴 겨울을 준비한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는 축제와 잔치도 많다. 이제 다가오는 추석을 시작으로 흥겨운 우리나라 전통문화 행사가 한인사회에 봇물을 이룰 것이다. 갈수록 풍성해지는 이 행사들을 보면서 한인사회도 이젠 결실을 맺는구나 하는 뿌듯함을 갖게 된다. 어김없이 성큼 다가온 이 가을, 계획한 일들을 얼마나 수확 했나 점검해 보자.
가을이면 누구나 수확을 보고 기뻐한다. 시작은 같았어도 수확의 양과 질이 다른 것은 계획과 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땀을 많이 흘린 농부는 흘린 땀에 비례해 커다란 수확을 얻을 것이며,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그만큼 좋은 성적을 낼 것이고, 시간을 늘여가며 열심히 장사를 한 사람은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돈을 벌 것이다. 어떠한 결과이든 수확의 때는 반드시 온다.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노랫말처럼 아무런 수확이 없는 가을을 두고 무조건 낭만이라 할 것인가? 이 가을에 수확이 변변치 않은 사람이 있으면 내년의 가을 또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 준비를 해 보자. 봄, 여름, 가을이 그래서 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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