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한 극우 한인단체 관계자가 기고를 보내왔다. 내용은 12월 한국대선에 관한 것이었는데 현 정부가 정권을 내놓지 않기 위해 북한과 연계해 대선이 아예 치러지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밀 것이라는 논지였다. 한마디로 “12월 대선은 없다”는 것이 그 보수인사의 신념 가득 찬 주장이었다.
금년 초 한미 FTA협상이 한창일 때도 ‘음모론’이 횡행했다. “노무현 정부가 FTA협상에 나선 저의가 무엇인가.” 보수진영에서는 협상의 동기 자체를 의구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음모론 좋아 하는 인사들이 내린 결론은 “반미 세력을 결집시켜 대선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근거 없는 것으로 곧 드러났다.
음모론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활개를 친다. 6년 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음모론이 극에 달했다. 당시 금융시장에 등장했던 대표적 음모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공격 정보를 미리 알고 사적인 네트웍을 통해 무역센터 안의 유대인들에게 미리 알려줬다는 내용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경제적 이익을 노려 테러를 가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문제는 음모론이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이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음모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이유다.
아도르노는 권위주의적 인간에 관한 연구에 있어 독보적인 학자이다. 그는 2차대전 후 나치즘과 파시즘 정권의 심리적 기반을 밝히는 연구를 했다. 그가 찾아낸 권위주의적 인간의 특성은 대충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은 과도하게 평가하면서 다른 집단은 지나치게 깔보고 경멸한다. 강한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굴종적이며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힘을 과시한다.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권위주의적 성향의 사람들일수록 모호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의 보수진영에서 UC 버클리 학자 4명에게 보수주의의 실체를 규명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들이 보수주의에 대해 대표적인 성향으로 꼽은 것이 바로 모호한 것을 잘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 평등에 대한 막연한 혐오와 두려움,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같이 나타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었다. 돈을 댔던 보수진영으로서는 본전도 못 건진 연구였지만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소중한 학문적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 대학의 과학자들이 이번 달 ‘네이처 신경과학’지에 발표한 논문은 이런 심리학자들의 결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은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진보주의자들의 뇌와 보수주의자들의 뇌가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진보주의자의 뇌는 전반적으로 모호함과 갈등에 관대한 반면 보수주의자의 뇌는 구조화 된 틀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론은 왜 보수주의자들이 대체적으로 고집스러우며 진보주의자들이 새로운 경험에 좀 더 개방적인가를 잘 설명해 준다. 이런 개방성이 종종 ‘말 바꾸기’와 ‘입장 바꾸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불확실한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모호함의 커튼’만 젖혀 버리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음모론은 매혹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는 ‘신정아·변양균 스캔들’도 이런 유혹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일 개연성은 높지만 아직까지는 몇 가지 기초적인 사실만 드러나 있을 뿐이다. 검찰 수사는 끝나지 않았으며 법원은 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상태이다. 그런데도 내용은 소설 같은, 그렇지만 어투는 단정적인 각종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합성 가능성이 있는 신씨 누드사진이 버젓이 종합일간지 1면에 실리면서 성상납 로비를 기정사실화 하는 해설 기사까지 뒤따른다.
이런 보도 태도는 보수성향이 강한 언론들일수록 두드러진다. ‘기사 욕심’ 혹은 ‘정치적 의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 상황의 모호함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그들의 성향이 검찰 수사를 앞서 가는 보도를 부채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짙은 안개 속 뿌연 풍경을 선명한 사진으로 만들겠다고 지나치게 ‘뽀샵’을 하다 보면 조작과 왜곡이 초래된다. 또 성급한 상황 해석은 종종 오역으로 이어지곤 한다.
‘참을 수 없는 상황의 모호함’에 휘둘리다 보면 정신적으로 쉬 피로감이 찾아온다. 세상사의 본질은 어차피 불확실성과 모호함 아니던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변화하는 속도 그대로 바로 볼 수 있는 느긋함과 진중함이 아쉽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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