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은 식품’ 분명하지만
항암 작용 최근 연구결과는
“미미하거나 직접 연관 없는듯”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조리방법 안맞으면 효과 전무
운동·라이프스타일과 밀접
과일과 야채가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최근에는 각종 암 예방 또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항암효과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항암효과가 높다고 알려진 과일, 야채에 대한 대규모 임상실험이 진행되어 기존 이론의 아성에 도전하는 연구 발표들이 나오면서 과일 야채의 항암효과가 도마에 올랐다. LA타임스는 최근 이에 관한 연구보고 사례들과 과일 야채의 항암효과를 광범위하게 분석했다. 그 내용을 정리한다.
펙틴, 비타민 C 등이 풍부하며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과. 엄마와 아이들이 사과를 따고 있다.
#과일과 야채, 분명 몸에 좋은 식품군
과일 야채는 비타민, 미네랄, 노화방지제, 섬유질, ‘피토케미컬’(phytochemical)이란 식물성 화학물질 등 몸에 좋은 영양소가 풍부하다. 피토케미컬은 최근 과학자들이 연구, 이해하기 시작한 식물 활성영양소. 식물(phyto= plants)과 몸에 좋은 퀴닌, 페놀, 타닌 등 화학물질의 합성어로 항산화물질로 알려져 있다.
토마토, 브라컬리 등이 1980~1990년대 발표된 연구 결과들에 의해 먼저 각광받기 시작한 채소들이라면 최근 석류주스는 거의 ‘기적의 치료약’으로까지 호평을 받고 있으며 블루베리, 케일은 장수 효과 등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또한 1991년 국립암연구소(NCI)와 PB HF(Produce for Better health Foundation)에 의해 시작된 하루 5가지 색의 과일, 야채를 적어도 5서빙 이상 먹자는 캠페인은 최근에는 아예 양이 늘어나 하루 4~13서빙까지 먹도록 권장되고 있다.
과일과 야채의 건강 효능에 대한 주요 연구들에서는 심장질환, 뇌졸중, 당뇨병, 심지어 암까지 예방 및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일, 야채의 항암효과가 미미하거나 아예 연관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 학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일 야채의 항암효과는 사람, 즉 유전에 따라 다르고 과일이나 야채의 종류, 조리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과일과 야채만 먹어서 암 예방을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운동이나 비만 여부, 식생활, 흡연, 라이프스타일 등 암 예방에서는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전 연구들에 따르면
이전에 나온 많은 연구들은 과일 야채의 항산화 가설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항산화제 즉 노화방지제로 비타민 A, C, E와 토마토의 붉은 색소 라이코펜, 당근의 오렌지 색소인 베타카로틴 등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DNA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성분을 무력화시키거나 씻어내는 청소효과를 한다는 것이다.
1997년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암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여러 연구를 통해 구강암, 인두암, 식도암, 폐암, 위암, 대장암, 직장암, 췌장암, 유방암, 방광암 등에 과일과 채소의 암 예방효과 증거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이 연구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과일과 채소를 하루 14~28온스 정도 다양하게 섭취하는 간단한 식생활에 변화로도 암 발생률을 20% 이상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일, 야채 섭취가 적극 권장돼 왔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연구 대상자의 규모가 100여명으로 적었으며, 연구 대상자의 기억을 토대로 과거에 무엇을 먹었는지에 바탕을 두었고, 또 연구 대상자들이 암환자들이라 몸에 좋은 것을 찾아 자신에게 맞는 것을 집중적으로 먹었던 점 등 여러 문제점들이 발견됐다.
최근엔 ‘딸기류 항암작용’에 주목
블루베리·체리·포도·석류 등 임상·동물실험서 ‘효과’
#실망적인 최근 보고들
2004년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10만9,000명의 남성과 여성을 대상으로 1984년부터 98년까지 약 14년간 실시한 연구에서는 5일 과일 야채 먹기의 항암효과는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럽의 10개 국가 52만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과일, 야채 섭취는 유방암, 전립선암, 위암 등 암 예방 효과에서 종합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실험은 이전 연구들과는 달리 대규모 임상실험, 환자의 기억 토대가 아닌 좀 더 과학적인 접근, 대상자가 암환자가 되기 전에 연구가 이뤄진 점 등이 보완돼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견됐지만 오히려 예상보다 미미한 결과가 나온 것.
하버드 의대 월터 윌렛 박사는 “암이 시작되기 전 즉 DNA가 손상되기 한 30년 전부터 과일 야채를 먹어 암 예방 효과를 봐야 하는데, 최근 나온 연구들은 아무리 오래됐어도 5년에서 10년 주기 연구라 이를 입증하기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조리법도 문제
토마토는 가장 유력한 항산화제인 라이코펜이 풍부한 식품으로 전립선암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라이코펜은 지용성으로 조리된 것이나 지방과 함께 먹어야 흡수가 잘 된다. 2002년도 4만7,365명의 남성을 12년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1주일에 2소스 서빙을 먹었던 남성이 한달에 한번 먹는 남성에 비해 23%나 전립선 암 위험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컬리나 컬리플라워, 케일 등 채소는 조리방법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국립 암연구소가 지난 8월 발표한 전립선암, 폐암, 대장암, 난소암을 연구하는 대규모 임상실험 연구에서는 실험대상자 남성 3만명을 대상으로 4년간 조사한 결과 일주일에 한번 이상 브라컬리를 먹는 사람은 한달에 한번 이하로 먹는 사람보다 45%나 전립선암 위험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컬리플라워, 브라컬리, 케일 등은 유기화합물의 일종인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s)가 풍부하다. 이 글로코시놀레이트는 브라컬리 등을 자르거나 씹으면 체내에서 소화되면서 이소티오시네이트(isothiocy-nates)로 전환되는데, 이 성분이 항 발암물질로 발암물질을 해독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조리되는 것이 더 좋은 토마토와는 달리 브라컬리는 수용성이라 조리되면 성분이 파괴된다. 2003년도 한 연구에 따르면 끓인 십자화과 채소는 8분에서 15분간 조리한 결과 18~59% 글로코시놀레이트가 파괴됐다.
항암음식으로 알려진 몸에 좋은 콜리플라워, 브라컬리 등은 수용성으로 날로 먹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람마다 유전자가 달라
사람에 따라 브라컬리의 좋은 성분을 물질대사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항발암 물질인 이소티오시네이트를 전환시키는 단백질 효소를 적게 분비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암과 결장암 환자 중 어떤 사람은 브라컬리의 항암 성분효과가 잘 받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계속 진행중인 국립 암연구소의 전립선암, 폐암, 대장암, 난소암 임상실험에 따르면 가족 병력이 있는 전립선암 환자에게 토마토의 항암효과가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엽산, 루테인이 풍부한 시금치가 전립선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50만명의 남녀를 조사한 결과 감귤류가 식도암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사과와 배 역시 항암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항암성분만 엑기스로?
비타민 A, C, E, 베타카로틴, 라이코펜 등 과일 야채에 들어있는 항암성분만 따로 투여한 실험 역시 효과가 크지 않았다. 2003년도 쥐 실험에 따르면 라이코펜만 투여한 쥐보다는 토마토 성분을 다 넣은 파우더를 주입한 쥐가 더 전립선암 치료효과가 컸다. 또한 2004년 발표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비타민 보조제 알약 섭취는 여러 암 예방 및 치료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경우는 항산화제를 너무 많이 섭취하면 암세포를 더 크게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핀란드에서 이뤄진 3만명의 남성 흡연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 알약들을 섭취하게 한 결과 오히려 폐암 위험이 높아져 연구를 중단한 사례가 있다.
최근 항암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석류. 여성에게뿐 아니라 남성 전립선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딸기류
래즈베리, 블루베리, 체리, 포도, 와인, 석류들. 이들 색이 진한 붉은색 및 보라색 과일들에는 플로보노이드로 불리는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미 농무부 연구에 따르면 블루베리는 항산화(노화방지) 효과가 가장 풍부한 대표적인 음식 톱 리스트에 꼽힌다. 폴리페놀은 파워풀한 항산화제로 항염제 역할, 또 암 성장 억제제로 알려져 있다.
UCLA 나빈드라 시람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46명의 전립선암 환자들에게 3년간 매일 8온스의 석류주스를 마시게 한 결과, 전립선암 지표 중 혈중 특이항원(PSA) 수치가 2배로 증가하는데 소요된 시간이 석류주스를 마시게 한 결과 54개월로 훨씬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치료 전에는 PSA 수치가 2배로 증가하는 데에는 15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PSA 수치가 2배로 증가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종양의 성장이 더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또한 블랙 래즈베리의 폴리페놀 엘라직 산(Ellagic Acid)에 관해 연구해온 오하이오 대학 게리 스토너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블랙 래즈베리 파우더를 섭취하게 한 쥐 실험에서 식도암 세포가 작아진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야채섭취만 중요한건 아니다
올 6월 발표된 1,49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성건강 연구(Women’s Health Living and Eating trial)에 따르면 유방암 생존자로 하루 30분씩 걷기 운동을 매주 6일씩 하면서 과일, 야채를 많이 섭취한 여성은 암 재발률이 44%나 낮았다.
반면 하루 5서빙의 과일, 야채를 섭취했지만 운동을 하지 않은 여성은 유방암 재발률을 낮추지는 못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역시 하루 13서빙까지 과일, 채소 섭취를 늘렸지만 유방암 재발이나 사망 예방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폐경기 후의 여성에게서 유방암 발병률을 낮추려면 체중 조절과 운동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특히 과다체중, 비만이 암 발생위험을 증가시키는 메이저 요소라고 밝혔다. 비만에 이어 흡연이 암발병 원인 2위를 차지한다. 몸에 아무리 좋은 과일과 채소라도 그것만으로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는 없다.
<정이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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