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되어 40여일간 억류되어 있던 한국인 인질이 모두 풀려남으로써 아프간 인질사태가 해결되었다. 애초에 인질로 잡혔던 23명 중 2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앞서 2명이 석방된 데 이어 이번에 나머지 19명이 모두 풀려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질로 잡혔던 사람이나 그 가족은 물론 이 사태를 가슴 조이며 지켜 보뎐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인질사건에서는 인질의 생명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일이 최우선 순위이다. 그러나 이번 인질사태는 당사자인 한국과 탈레반의 문제가 아닌데 복잡성이 있었다. 탈레반 무장 세력의 요구조건은 인질과 아프간의 감옥에 있는 탈레반 수감자들을 맞교환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한국정부의 권한 밖에 있는 사안이었다. 탈레반 수감자를 관할하는 아프간 정부도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테러집단과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인질 구출 문제는 돌파구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탈레반 무장 세력과 직접 대면협상을 하여 수감자 맞교환 대신에 다른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형식으로 협상을 타결 시켰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질 석방의 대가는 아프간 내 한국군의 연내 철군, 한국교회의 아프간 선교 금지, 그리고 공식 확인 없이 소문으로 나돌고 있는 인질 1인당 10만 달러이상의 몸값 지불이라고 한다.
이 협상 결과를 놓고 한국이 너무 많은 것을 주었고 탈레반이 명분과 실익을 모두 챙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는 한국군의 철군 계획이 이미 있었던 일이고 아프간 여행이 금지된 상황에서 아프간 선교 금지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큰 양보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며 탈레반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취한 형식이 되므로 탈레반의 승리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의 직접 대면협상이 테러집단과 정부가 협상한 선례를 남겼으며 탈레반 무장 세력의 지위를 확고하게 격상시켜 줌으로써 앞으로 테러집단의 활동이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아프간 선교 금지를 약속한 것은 이 선교단이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온 결과를 만들고 만 셈이다. 성경에서 선교는 지상명령이므로 선교를 위해서는 목숨도 바쳐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실제로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선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이번 아프간 선교단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국 기독교의 아프간 선교 전체를 포기했다.
협상이란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는 것이며 이 점은 인질협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은 인질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군 철군과 몸값 지불은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 이것이 한국의 당연한 양보 조건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협상 과정에서 이 양보조건은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조건이 추가될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이다.
이 인질협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인으로 사우디 등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한 우회협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무장 세력에 불과한 탈레반은 이슬람 국가들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협상과정에서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한 외교적 노력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탈레반이 인질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절박한 이유도 몇 가지 있었다고 한다. 아프간군의 공격을 피해 언제까지나 인질을 끌고 도망 다닐 수도 없었고 특히 내달 중순에 시작되는 라마단 기간을 외국여성 인질과 함께 넘길 수 없는 것이 탈레반의 고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마단 이전에 인질을 석방한다는 방침은 탈레반 내부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석방 구실만 찾기를 원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인질을 구출해 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무튼 인질사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해결에 따르는 후유증은 남아 있다. 테러집단과의 협상이 앞으로 무장테러 세력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한국은 앞으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또 한국의 해당 교회나 기독교계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이제 과제로 남게 되었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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