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 명문 대학 교수라 하더라도 일반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면에서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로버트 실러 교수는 좀 특이한 케이스다. 그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80년대 초 당시 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시장 효율성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비판하면서부터다.
이 이론은 시장에서의 상품 가격은 모든 정보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항상 적당하다는 가설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없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 속담이 바로 그 요점이다. 싼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러 교수는 1920년대 이후 미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각종 자료와 비교 분석해 본 결과 그 변동 폭이 객관적인 수치로는 설명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시장은 종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감정적이고 미친 것처럼 요동친다는 것이다. 그가 연구 논문을 발표한 후 터진 1987년의 주가 대폭락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줬다.
시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파는 소비재 시장과 장차 돈을 벌기 위해 물건을 사는 투자 상품 시장이 그것이다. 소비재 시장의 경우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많아지고 오르면 줄어든다.
그러나 투자 상품 시장은 때때로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물건 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오히려 수요는 늘어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물건을 사겠다고 아우성치고 더 이상 살 사람이 없을 때 비로소 광풍은 끝난다. 일단 이 물건 값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그 때는 너도나도 팔겠다고 몰려든다. 결과는 폭락 장세다.
이런 투자 상품 중 대표적인 것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다. 2000년 하이텍 붐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비이성적인 열광’(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책을 펴내 주식 거품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는 일약 유명해졌다.
그는 그 후 주택 버블이 터지기 오랜 전부터 그 위험성을 여러 차례 지적해왔으며 미국 주택 가격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케이스-실러 인덱스라는 것을 고안해냈다. 이 지수는 다른 주택 가격 지수가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지역에서 매매된 모든 주택가를 자료로 삼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같은 규모의 주택 가격이 어떻게 달라졌나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케이스-실러 인덱스가 미 주택 가격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인덱스에 따르면 미 주택가는 지난 2/4분기 전년에 비해 3.2% 떨어졌다. 지난 20여년 만에 최대 폭이다. 이는 전국 평균이고 가장 버블이 심했던 남가주와 라스베가스, 플로리다 일대의 집 값 폭락은 두 자리 수를 훨씬 넘고 있다. CNN은 최근 샌버나디노 일대의 신축 주택 단지 경매 뉴스를 내보내면서 작년에 45만달러 하던 새 집이 최근 경매에서 30만달러에 팔렸다고 보도했다.
케이스-실러가 지난 100년 동안 미 주택 가격을 조사해 발표한 그래프를 보면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 가격은 1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1890년대 말부터 1920년까지, 1920년 말부터 말까지 등은 큰 폭으로 하락했고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말까지는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90년대 말부터 작년까지의 미 주택 붐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것이었나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주택 버블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도표가 있다. 역시 2000년 하이텍 버블의 위험을 경고한 제임스 스택이 고안한 인터넷 주식과 주택 건설업자 지수가 그것이다. 95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인터넷 지수와 2000년부터 올해까지 진행된 주택업자 지수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둘 다 한 때는 1,400%까지 올랐으나 결국에는 이를 모두 까먹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주택 시장의 침체가 얼마나 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주는 분명한 교훈은 비정상적인 것은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오며 투자에 있어 “이번만은 다른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주택 파동이 집은 주거 수단이지 투자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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