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서 기자회견..납치 직후 탈레반이 전원 살해위협
금식기도를 단식으로 여긴듯..탈레반이 시켜 아프다고 했다
탈레반에 납치됐다가 석방된 유경식(55) 씨는 31일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열린 한국 언론과의 첫 회견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며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지난 29일 풀려난 유 씨는 카불의 세레나 호텔에서 한국인 인질 대표 자격으로 서명화(29) 씨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고, 정부가 많이 타격을 입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 씨는 수차례 사죄의 뜻을 밝혔고, 서씨도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염려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42일간의 억류 생활에서 풀려난 것에 안도하면서도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석방의 기쁨보다는 살해된 배형규, 심성민씨에 대한 슬픔과 정신적 충격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밝혔고 창백한 안색에 수척한 얼굴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현지 한국 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29일 석방된 12명과 30일 풀려난 인질은 31일 오전 1시께(현지시간) 이 호텔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의 `재회’를 했다.
또 이들은 배씨와, 심 씨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으며 땅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 피랍 당시 상황..탈레반, 알카에다 라며 위협
유 씨는 지난 7월 19일 발생한 납치 상황에 대해 낮에는 안전하다고 해서 카불에서 아침에 출발했다며 전세버스 운전사가 아는 사람이라면서 현지인 2명을 태워 앞에 앉혔는데 20~30분 후 이들이 총을 발포하면서 차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후 무장한 탈레반 2명이 버스에 올라 타 한국인을 하차시킨 뒤 승합차로 나눠 옮겼고, 이 과정에서 고(故) 배 목사는 실신했다고 유 씨는 설명했다.
유 씨는 납치 직후 탈레반은 자신들이 사복 경찰이고,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인질을 전체 집합시켜서 일렬로 세운 뒤 기관총과 소총으로 위협하면서 자신들이 알-카에다라고 말한 뒤 돌변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그 탈레반이) 또 총을 쏘는 흉내를 하면서 `너희가 잘못하면 이렇게 한다’고 위협했다며 (인질들이) 패닉 상태였다고 밝혔다.
◇ 억류 생활..처음엔 짐승 우리 같은 곳에 갇혀
유씨는 인질 생활과 관련,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자고, 다시 잤다며 사태 초반에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기도를 했는데, 사흘을 안 먹으니 탈레반이 보기에 단식으로 보여진 것 같다고 밝혔다.
유 씨는 또 처음에 감금됐던 장소에 대해 반지하에 짐승 우리 같았고, 창도 없고, 환기통이 하나 있었다며 가축을 키우는 농가에로 옮겨진 뒤에는 주민들이 감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질들은 6일쯤 지난 뒤 3~4명씩 분산됐고, 나는 12번 이동했다며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헤드라이트를 끈 오토바이에 실려 이동했고,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 번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인질들이 억류생활 도중 언론과의 통화에서 인질 일부가 위독하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탈레반이) `아프다고 해야지 구출해준다’면서 멘트를 시켰다며 (난) 갑상선 수술 때문에 호르몬제를 부탁했는데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 이지영씨 석방 양보 확인
그는 이지영 씨의 석방 양보설에 대해선 여자만 세 명인데 두 사람을 석방한다고 하니 남은 한 사람이 힘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뒤 (세 명이) 기가 막혀서 울었는데 (이 씨가) `나 대신 너 가라’고 이야기해서 김경자 씨가 가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인질들에 대한 소식을 알았는지 여부에 대해 어젯밤까지 소식을 몰랐지만 탈레반이 들려준 라디오 영어뉴스를 통해 여자 2명이 석방됐고, 2명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른 인질들이) 충격받을까 봐 내색을 못하고 속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군지는 몰랐지만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항하거나 탈주 오해를 받고 사살된 것이 아닌지 걱정했고, 배 목사는 살해된 것으로 추측했다며 (살해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목사 되기 전 선교 활동차 아프간 행
한편 유 씨는 아프간 선교를 떠난 이유와 관련, 신앙을 하는 입장에서 목사가 되기 전에 단기 선교를 어떻게 하는가..(궁금해 하던 참에) 아는 선교사 중에 `마침 아프간팀이 가니까 같이 가라’라고 해서 갔다며 배울 겸, 봉사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향후 계획과 관련,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다니는데 이번 주 개강했으니 학교를 가야 한다며 다들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감격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카불=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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