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주택융자의 남용이 가져온 신용경색으로 글로벌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 해결을 위해 최근 FRB가 시중 은행들에 직접 공여하는 연방준비은행 대출에 대한 할인율을 6.25%에서 5.75%로 급히 낮췄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사채를 외면하고 연방채권에만 관심을 보여 시장의 유동성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조짐을 보인다.
이 FRB의 재할인율은 연방준비은행이 정하는 기본 연방 단기자금 금리와 다르다. 그 금리는 아직 5.25%이고 여기에 시중은행들이 3%를 붙이면 우량고객이 부담하는 월스트릿 우대금리가 된다. 실제 개별은행의 우대금리는 이것보다 주로 0.25%가 더 높다. 위의 할인율이란 보통 은행들이 자주 쓰는 경우가 아니고 또 그 자금을 빌릴 때 연방은행의 ‘할인창구’란 곳에서 빌리고 주로 문제가 있는 은행들이 쓴다는 일반 금융계의 인식 때문에 보통 은행들이 이용을 꺼린다.
위에서 말씀 드린 단기자금 투자자들이 연방채권에만 관심을 보이는 게 왜 나쁘냐 하면 시장이 불확실해서 더 좋은 유동성 관리 방법이 있는데도 안전만을 찾아 수익률이 더 낮은 국채에만 몰리는 게 경제의 유동성 문제 해결에 좋지 않은 사인을 보이기 때문이다(실제 우량 사채금리가 5.5%인데도 4.3% 정도의 연방 채권에만 지금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다).
모두가 안전한 국채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 자체가 FRB의 버냉키 의장이 시장을 안심시켜 유동성 문제 해결을 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불신임 투표 같은 것이다. 이래서 단기 국채 수익률이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이 떨어졌다. 이것을 설명 드리면, 국채 금리(산수의 분수계산에서의 분자)는 그냥 두고 분모만 올리면 분수 크기가 주는 것(채권 수익률 저하)으로 이해하시면 된다.
FRB의 발표 이후 주식과 채권시장이 금방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가장 유동성 움직임에 민감한 편인 머니마켓 펀드 매니저들이 FRB를 믿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머니마켓은 이익 마진이 아주 낮은데 조금이라도 손실이 나면 큰일이라 위험에 대한 인식이 아주 섬세할 정도다. 보통 머니마켓 매니저들은 국채를 주로 사지만 아주 좋은 우량 사채(상업어음 같은 것)도 사두고 있는데 요즘 이 사람들이 아주 겁에 질려 있어서, 신용경색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실감한다.
실물경제의 움직임은 과학이 아니다. 조그만 인식의 차이가 경제의 큰 물줄기를 바꾼다. 정부가 조그만 위협을 잘 추스르지 못하면 후진국에서의 물건 사재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지금 한국에서 보는 것처럼 경제가 어려워 저소득층은 하루하루 살기가 어렵고 대학 졸업한 젊은이들이 직장 입사시험 치는데 경쟁률이 400대1이라 하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는 기업쪽보다는 파괴적인 강성 노조와 같은 심정을 갖고 있다고 국민들이 믿으면 그것으로 살아있는 경제는 기가 죽어버린다. 불안하니 기업이 투자를 안 하게 되고 투자가 죽어버리니 돈이 갈데없어 아파트 값이 폭등하고 골프장 회원권 값만 말이 안 되게 올라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경제가 잘 되고 있고 자기가 경제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억울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는데 냉소로 보기 전에 그의 얘기가 맞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사실 대통령이 경제 정책에 있어 할 일이 별로 많지도 않다.
필자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좀 느낌이 묘하다. 경제는 대통령이 하는 게 아니다. 경제를 잘 아는 친노조 성향의 대통령보다 경제를 모르는 친기업 성향의 대통령이 훨씬 경제에 도움이 된다. 국민들이 “아, 이 사람은 친노조 성향이구나” 하고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경제는 어렵다. 그것이 경제가 가지는 기본성향이다. 경제를 모르더라도 좋은 인간성을 가지고 국민 복리에 관심이 많은 대통령이 똑똑하다고 소문이 난 경제 전문가들을 임명만 해놓으면 그것으로 대통령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아, 또 있다. 절대 그 전문가들이 하는 일에 이래라 저래라 쓸데없이 아는 체 하지 말고 그들에게 맡겨놓는 것이다. 경제 대통령이란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이 아니고 경제와 국리민복에 관심이 많다고 국민이 그렇게 알고 있는 대통령을 말한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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