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과 조정래였던가. 노무현 대통령의 출현을 가져온 2002년 대선 결과에 대해 극히 상반된 논평을 했던 한국의 두 작가가. 한 사람은 선동성에 노출된 젊은이가 다수가 된 현상으로 보았다. 다른 사람은 혁명으로 받아들였고. 어느 쪽 평가가 맞을까.
한동안 그 기세가 대단했었다. 총선에서 열린 우리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민주노동당은 눈부신 약진을 했고. 2004년 무렵의 정치 기상도로, 동시에 나온 전망이 좌파 전성시대였다. 앞으로 20, 30년간 계속 좌파의 집권이 가능하다는.
좌파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우파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 우파 쪽에서도 공공연히 돌던 말이었다. 그 변화는 가히 혁명에 가까웠다.
이제 와서 보면 그것도 아니다. 그 기고만장하던 열린 우리당이 공중분해 됐으니. 무엇이 그러면 좌파의 성공 스토리를 중지시켰나. ‘시대정신’이란 단어가 새삼 떠올려진다. 그와 무관치 않아 보여서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세계화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프리드먼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의 세계를 세계화의 시대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편 그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다
일본제 자동차인 렉서스는 바로 세계화를 상징한다. 반면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올리브나무는 세계화를 거부하는 세력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렉서스는 미래다. 개방성이고, 접속이다. 올리브나무는 과거로의 회귀다. 폐쇄성이고 고립이다.
정보혁명시대인 오늘날 대세는 세계화다. 그러나 그 세계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그렇다고 이 두 세력 간의 갈등을 반드시 문명과 문명의 충돌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한 국가 사회에 두 세력이 나란히 존재한다. 요는 ‘렉서스’적 요소가 강한지 ‘올리브나무’적인 요소가 강한지 여부에 따라 그 사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다 맞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히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점에서 이 세계화 논리는 한국사회를 돌아보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관련해 주목되는 여론조사가 있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이 한국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다. 반미정서가 팽배해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는 무관심이다. 그리고 중국에 열광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의 모습이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이와 정반대의 한국을 보여준다.
핵문제만 해도 그렇다. 70%의 한국민은 북한의 핵보유를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핵 도발을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지지하고 있고, 또 92%의 한국민은 보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원할 정도로 미국에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이 여론조사가 전하는 또 다른 두드러진 현상은 중국에 대한 팽배한 불신감이다. 81%의 한국민은 중국의 부상을 위협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한 가지 지향점을 보이고 있다. 세계화가 한국사회의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뭐랄까, ‘올리브나무’적인 요소에 점차 피로감을 보이면서 ‘렉서스’적 요소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할까.
세계화의 반대편에 있는 게 폐쇄적 민족주의다. 폐쇄적 민족주의는 바로 고립주의와 통한다. 그 가장 기형적 모습이 ‘우리민족끼리’만 주창하고 있는 세력이다.
그 구호에 한동안 열광했었다. 그 가운데 북한 핵은 우리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했었다. 미국과의 FTA는 경제주권을 팔아먹는 매국적 행위란 지탄과 함께. 그 주장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왜 좌파의 성공 스토리는 좌절됐는가.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잘못 파악한 데 있는 게 아닐까.
‘광주가 시대정신이다’-. 여전한 집권층의 주장이다. 이 정의(定議)는 아예 정치공식화 됐다. 광주정신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하여튼 모든 것의 출발점은 광주다. 그 ‘87년 체제’ 담론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선이 본선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어떤 양상을 보일까. 치열한 흑색선전이 벌이질 것이다. 동시에 선거담론구조지배를 위한 싸움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 싸움은 다름이 아니다. 시대정신에 어느 쪽이 더 충실한가의 경쟁이다.
선거 전망은 그렇다고 치고,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노무현 대통령 출현은 혁명의 산물인가, 선동의 결과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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