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그리스 강에 마음 빼앗긴 병사들
예상 밖의 많은 우리 한국계 군인들이 이라크전에 참전하고 있거나 이미 다녀 왔다는 사실을 필자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바그다드 그린 존(Green Zone)의 병원에서 근무하였다는 군의관, 탱크병으로 격전지에 투입되었다는 기갑부대 출신 병장, 그리고 육군 항공대 헬기 조종 중에 지상공격을 받고 부상을 당하였다는 2세 장교의 이야기를 부모님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70, 80년대 이민 1세대가 사병으로 주로 입대하였는데 지금은 2세대가 장교로 많이 입대하고 있는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이들 이라크에서 돌아온 장성한 자녀들이 지금 심각한 정신과 장애를 앓고 있다고 부모님들이 기막힌 사연을 눈물로 호소해 오셨다. 비록 몸은 전쟁터에서 돌아왔으나 마음은 전쟁터의 두려웠던 경험과 기억에 송두리째 빼앗기고 와서 본인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고 한다. 장성한 자녀가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우울증, 공황장애, 그리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PTSD) 등으로 병원 출입에 직업 없이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전 참가자 약 17%가 PTSD를 앓고 있다고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은 최근 조사에서 밝히고 있어 참전병사 6명 중에 1명이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전역 후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신경정신과 진단기준에서 불안장애로 분류되어 지는 PTSD는 전쟁터와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나, 또는 비록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아닐지라도 본인이 그렇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다음 세 가지 중요한 전신적 증상으로 인하여 정상적 삶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1)과민반응 현상-항상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스러워하며 작은 소리, 물체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 심장박동의 상승,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이루어지며 반복되는 불안감에 경각심을 띠고 수세를 취한다. (2)충격의 반복된 경험-포탄은 비록 티그리스 강 건너 멀리서 파열하였어도 그 파열음과 공기의 진동, 그리고 이때 느낀 강한 불안감은 그 당시 상황과 함께 연계되어서 대뇌에서 감정을 기억하는 변연계에 뚜렷하게 각인되어져 마치 그 당시 사건이 실제로 재연되는 듯하다. (3)감정회피 또는 마비현상-충격의 감정, 생각, 상황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감정반응이 소실되며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아무 무게중심을 두지 않는 비현실성을 들 수 있다. 또한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분노, 피해의식, 수치심, 고립감 등으로 시달리다 인간의 정신 능력이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수위를 초과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자포자기, 무력감으로 인하여 PTSD는 거의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되며, 나중에는 삶 그 자체를 포기하는 우울증이 더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우울증의 베일을 벗겨보면 바로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의 상흔이 도사리고 있다.
우울증과 PTSD는 모두 치료가 가능한 정신과 장애로 심리적인 문제이다. 전쟁터의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은 사라졌고 그것은 다만 감정기억 속에 상처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기억을 형성하고 있는 자율신경계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도록 하는 인지적 행동변화로 기억 속의 상처도 치유가 가능해진다. 치료방법으로는 인지행동요법, 바이오피드백, 약물치료의 병행이 있으며 집요하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불안사고, 소리나 물체 움직임 등에 화들짝 놀라 반응하는 자율신경계의 과민반응 현상을 조절하는 기술을 익혀서 자율신경의 과민한 반응을 차츰 가라앉히도록 하여야 한다. 비록 PTSD 발생 이전의 평온한 심리상태로까지의 완전한 회복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으나 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적 삶을 이끌어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그것이 비록 의사나 헬기 조종과 같은 전문 직업이라 해도 말이다.
리차드 손
<임상심리학박사·PsychSpecialist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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