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중국 역사는 왕조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숱한 왕조들이 스쳐가서다. 그 중국 역사에서 ‘최악의 반열’에 드는 황제들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후진(後晋)의 고조 석경당이 그 후보의 하나일 것이다.
후진은 5대10국으로 불리는 시대의 단명 왕조 중 하나다. 정권 유지를, 아니 정권 탈취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가능하다. 아마도 그 시대의 표어일 것이다. 한 마디로 난세다. 어느 정도였나. ‘중국사에서 가장 몰염치한 시대’로 꼽힐 정도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출현한 게 ‘아들 황제’로 불리는 석경당이다. 그는 본래 후당의 절도사였다. 그 후당의 말제 이종가와 불화 끝에 반역을 꾀한다. 그러나 실력이 달린다. 찬탈 욕심은 불같은데.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낸다.
장성 이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거란의 맹주 야율광덕에게 원조를 청한 것이다. 스스로 아들이라 칭하고 매년 막대한 세폐를 바칠 것을 약속한다. 거기다가 ‘연운(燕雲)16주’로 불리는 안문관 이북의 땅을 바치겠다고 제의한다.
결국 거란의 지원으로 찬탈에 성공한다. 그럼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악명이 자자한 ‘아들 황제’가 된 것이다.
‘연운16주’는 오늘날 북경 인근의 하북성 일대로 북방민족의 전통적 남진 루트인 요서회랑의 코밑에 있다.
이런 전략요충지인 ‘연운16주’ 할양은 한족(漢族)의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 거란에서 그 뒤를 이은 여진, 몽고 등 북방민족의 침략과 내정간섭의 빌미를 제공해서다. 송(宋)만 해도 그렇다. 말이 천자의 나라이지 요(遼)·금(金)의 내정간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급기야는 송의 두 황제가 금나라 군에 잡혀간다.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 간 후에도 금의 압박에 못 이겨 주전파인 명장 악비를 모반죄를 씌워 제거하고 송이 신하로서 금에 조공을 바치면서 강화조약을 맺는다. 그런 수치가 없는 것이다.
‘찜찜하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발표가 나왔다. 꽤나 요란하다. 북핵 문제해결에 획기적 돌파구라도 마련된 것 같다.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한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한 국내 언론이 보인 반응이다.
인기가 바닥에, 임기가 반년도 안 남은 대통령이지만 현직의 프리미엄을 행사하겠다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속은 뻔하다. 그래서 찜찜하다는 표현으로 요약한 것이다.
예상했던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틈만 나면 김정일을 만나겠다고 했다. 대선을 1년도 더 앞에 둔 시점에서도 정상회담 깜짝 쇼 이야기가 나왔다. 여권의 대권주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마치 알현이라도 하듯 평양을 방문한 게 엊그제다.
그렇게 공을 들여 성사된 정상회담이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왜 만나나’는 우문(愚問) 중에도 우문이다.
정작 관심이 끌리는 건 다른 대목이다. 초조감을 지나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남북정상회담카드를 꺼내 든 집권세력에게서 그런 느낌이 역력히 보인다. 그게 ‘찜찜한’ 것이다.
뒤에서 훈수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앞장섰다.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더 그런 느낌이다. DJ를 두고 하는 말이다. 8순의 전직 대통령이 왜. 초조하다 못해 절박한 심정이 그를 정치일선으로 내모는 게 아닐까.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경우…. 숨이 막히니까.
대통합민주신당 발족식도 그렇다. 옷만 바꿔 입었지 결국은 도로 열린 우리당이다. 탈당에, 합당에, 재 탈당에. 6개월 동안 날탕을 치더니 이 꼴이다. 지탄이 쏟아진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정치사기극이라고. 왜 갈팡질팡 인가. 역시 절박감의 발로로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왜 찜찜한가.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극도의 초조감, 절박감 가운데 김정일을 정상회담으로 이끌어냈다. 뭐랄까, 전적으로 김정일에게 매달린 형국이라고 할까. 그 반대급부는 그러면….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벌써부터 여러 얘기가 들린다. 뒷거래 의혹이 있다. 수백억달러의 퍼붓기가 이루어진다. 서해북방한계선(NLL)이 재설정 된다 등등. 더 험한 소리도 들린다. 2007년 대선은 김정일이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선거가 된다는 것이다. ‘장군님의 지시에 따라 800만표 정도는 왔다 갔다 한다’는 식의. 그래서 나오는 일부의 전망은 이번 선거는 단순 정권교체가 아닌, 체제교체의 선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석경당의 후일담은 어떻게 되나. 찬탈에 성공한 후 얼마 안 가 석경당은 죽는다. 그리고 등극한 게 2세 황제인 출제다. 그 출제 4년, 거란의 침공에 후진은 10년 만에 망한다. ‘연운16주’의 심각한 후유증만 남기고.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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