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작년에 같은 제목으로 이 지면에 글을 쓴 일이 있다. 그 글의 연장선이 되겠지만 다시 쓰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에 한국 내에서 6.25가 어느 나라의 전쟁이냐는 설문지에 많은 학생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로 알고 있었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체험하지 않은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또 오랜 세월이 경과된 일이니까. 그렇다면 8.15 광복절의 의미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선 ‘해방’이란 말의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45년 8월 15일을 체험한 사람들의 수효도 매년 줄어가고 있다. 설령 그 당시 태어나 있었더라도 나이가 어렸다면, 희미한 영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해방’이란 엄청난 사건이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강제 합방된 치욕적인 날에서 벗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45년의 8월 14일과 15일은 하루 사이에 세계가 바뀌었고, 한국 역사가 바뀌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에서 ‘한국’이란 제자리에 돌아왔다.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은 한국을 일본이 통치하였음을 말한다. 즉 일본의 정치 시스템 속에서 한국인이 살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하여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들은 일본을 내지, 한국은 외지라고 일컬으며 모든 정책은 일본인이 주인 행세를 하도록 시행되었다. 그들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한국 통치는 극에 달하였다. 이름은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해야 하고, 일상용어는 일본말이어야 하고, 남자는 군인으로, 여자는 정신대로 나가야 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징용되어 군수공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들은 인력 뿐만 아니라, 한국 내의 물자를 모조리 전력으로 사용하였다. 이토록 한국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괴롭히던 일본이 전쟁에 지면서 우리는 해방된 것이다.
8월 15일은 태극기, 만세, 한국말, 웃는 얼굴로 꽉 찼었다. 빼앗겼던 것을 되찾은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래서 이 시대를 지내온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은 수없이 많은 애국지사들의 희생과 국제간의 역학 관계로 예고 없이 맞이한 벅찬 기쁨이었다.
각 개인에게는 보호막이 있다. 부모 형제로 이루어지는 가족, 이웃, 지역사회, 국가가 개인을 보호한다. 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국가의 보호막이다. 요즈음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로 붙잡힌 한국인들을 구출하는데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국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나라를 사랑하며 국가에 봉사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지배 하에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나라는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스스로 지켜야 한다. 나라는 확대된 내 자신이니까 사랑해야 한다. 나라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세계에 속해 있다는 점 등의 깨달음은 귀한 교훈이다.
그렇다면 거주국을 바꾼 사람들의 보호막이 되는 것은 어느 나라인가. 두고 온 나라는 정신적으로 도와주고, 현재의 생활권인 나라는 일상생활을 보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두 나라가 제각기 50%씩 보호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두 나라의 100%씩인 보호가 포개진다고 생각하면 든든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개별적인 사람의 생활 태도에 달렸다고 본다. 두 나라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한다.
두고 온 나라는 잊어야 하는가. 내가 버렸는가. 더 이상 나와는 전연 관계 없는 나라인가. 지속적으로 관심이 있고 애정을 느끼는 나라인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누구의 선택인가. 이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만 가져야 하는가. 두 나라는
나와 관계가 있고, 내가 공헌해야 하는 곳인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여기서 출발하게 된다.오는 10월에 태어날 한국고전번역원(전 민족문화추진회) 조 순 회장은 퇴임하면서 ‘국가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과거-현재-미래를 연결시키는 일’임을 환기시켰다. 개인 역시 과거-현재-미래에 살면서 자기 자신이 연결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난 일을 반추하면서 오늘에 살고, 미래를 열게 되는 것이다. 8월 15일 해방의 뜻을 되새겨 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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