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genocide)’란 말이 자주 눈에 띈다. 인류학살, 대학살 등으로 번역되는 그 끔직한 단어 말이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때 우려되는 게 ‘제노사이드‘다. 이라크는 물론 중동지역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단지 추측만으로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라크사태를 둘러싼 논란이다. 그 초점이 어느덧 바뀌었다. 이슬람 수니와 시아파간의 종파분쟁이 대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제노사이드의 가능성‘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20세기는 ‘제노사이드의 세기’다. 20세기에 대한 한 정의다.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 600만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됐다. 공산체제 희생자는 1억이 넘는다. 대학살은 이후에도 곳곳에서 자행됐다. 해서 내려진 정의다.
‘제노사이드’는 그러면 20세기 이데올로기의 소산인가.
“원시부족의 방식대로 전쟁이 치러졌다면 세계 대전의 희생자 숫자는 20억에 이르렀을 것이다.” 인류학자 니콜라스 웨이드의 말이다. ‘제노사이드’는 현대의 이데올로기가 빚은 비극만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인류역사의 여명기 원시부족의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더 엄청난 학살극이 벌어졌다. 전쟁은 종종 한 부족의 멸절을 의미했다. 전투 양상은 때문에 더 잔인하고 무자비했다는 것이다. 수만을 헤아리던 언어가 대부분 사라진 것도 바로 부족 간의 끊임없는 전쟁에 그 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쟁은 상대 부족의 ‘인종 청소’를 의미했으니까.
대학살의 보다 근본적 원인은 원시 부족적인 요소, 다시 말해 ‘페이거니즘’(paganism)에서 찾아진다는 얘기다. 페이거니즘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체주의의 문화는 죽음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 페이건적인 요소가 강조될 때 뒤따르는 게 대학살이다. 나치즘의 경우를 보자. 아리안민족의 신화가 새삼 주창됐다. ‘예수보다는 지그프리드’가 강조된 것이다. ‘나치 페이거니즘’이다. 그 결과가 유대인 대학살이고, 세계대전이다.
‘아메리카니즘’의 저자 데이빗 젤런터 같은 사람은 20세기의 전체주의는 바로 페이거니즘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나치나, 소련이나, 신도(神道)를 신앙하는 군국주의 일본을 모두 같은 맥락으로 본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제노사이드의 가능성이 우려 된다’ - 그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왜 이 같은 전망이 나올까. 이슬람문명, 그 문화에 어딘가 대학살을 불러올 요소가 잠복해 있어서인가.
단정적인 표현은 피했다. 그러나 이슬람을 페이거니즘의 한 형태로 분류했다. 그럼으로써 그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누가.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그 반대편으로 분류되는 신학자다. 그것도 80년도 훨씬 전에.
“이슬람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패러디, 캐리커처, 그리고 표절에 불과한 일종의 페이거니즘이다.” 프란츠 로젠츠바이크가 일찍이 내린 정의다. 마르틴 부버와 함께 20세기 종교 철학자로 정평이 있는 그가 대표 저서 ‘구원의 별’을 통해 내린 이슬람에 대한 정의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가 아니다. 냉철한 철학적 사유의 결과 그런 결론에 이른 것이다.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사랑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있으므로 그 사회에서 인간은 사랑받는 존재로서 그 하나, 하나가 존중되는 것이다.
이슬람의 알라는 고대 동양의 전제자가 신격화한 이미지다. 이 같은 신(神)의 모습은 사랑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없는 사회, 다시 말해 페이건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다. 그 사회에서 한 존재로서 개인은 무시된다. 전체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하나님을 신앙하는가. 그에 따라 한 개인의, 전체 사회의, 또 한 문명의 체질이 형성된다. 코란의 가르침은 생명보다 죽음을 더 중요시 여긴다. 이 가르침 때문인가. 스스로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남의 죽음은 더 말한 나위없다. 아랍 이슬람권에서 흔히 목격되는 사례다. 이 죽음의 문화가 바로 페이거니즘의 공통된 특징이다.
“오는 새 천년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게르만계와 아랍계의 대투쟁의 시기로 세계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로젠츠바이크가 1920년에 한 선언이다. 9.11사태와 뒤이은 테러전쟁을 보기나 한 것처럼.
그 예언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는 문명의 충돌, 종교간 전쟁은 멀리 이스라엘, 유럽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인들의 문제도 된다는 사실을 새삼 보여주고 있어서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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