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코레이 주누비’ 무사히 살아 돌아올 것”
현지르포 / 한국 본보 김희원기자 탈레반 인질 억류 가즈니주를 가다
한국인들의 억류 소식이 전해진 21일(현지시간) 피랍 지역인 가즈니주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기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 중인 비정부기구(NGO) 취재차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인 피랍 사건이 발생한 가즈니주에 도착했다. 총을 들고 검문하는 군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혹시 탈레반이 아닐까’ 하는 긴장감에 숨이 멎는 듯했다.
이곳에 풍성한 것이라곤 흙먼지바람뿐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강한 바람을 타고 모래가 온 몸을 파고들었다. 가늘게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려니 ‘코레이 주누비(남한 사람)’를 알아본 아프간인들이 먼저 다가왔다. 현지 일반인들도 한국인의 피랍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현지인 하심씨는 “탈레반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외국인의) 목숨인데 이처럼 시간을 끌며 군대 철수와 포로 석방 등의 요구조건을 내거는 것을 보니 무사히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가즈니주 조구리군에서 만난 헤르파니 조구리군 군수는 “아프간인들이 오가기에도 쉽지 않은 길을 이처럼 달려와주니 너무 고맙다”며 “이번 사건이 전체 아프간인의 의사로 오해돼 한국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현지인도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아프간인들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위로했다.
피랍 사건이 발생한 가즈니주는 외국인들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기자도 반나절이 걸리는 이동 중에 부르카를 써야 했다. 부르카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아프간 여성들이 입는 온몸을 덮는 장옷으로 눈 부위만 망사 처리해 희미하게 밖이 보인다. 부르카를 쓴 채로는 말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다. 또 사막 지역의 한낮 지열까지 더해져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탈레반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써야 한다’는 안내원의 말 때문에 이동 중에 벗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현지 여성들의 장시간 이동이 드문 탓에 오가는 도로에서는 차량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됐다. 외국인이 눈에 띄는 게 좋을 리 없다 보니 화장실조차 갈 수 없어 반나절 넘게 생리현상마저 참아야 했다.
수도 카불로 돌아오는 데는 11시간이 걸렸다. 피랍 일행이 선택한 고속도로와는 다른 우회도로를 택했다. 그러나 만의 하나 탈레반 무리가 나타난다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재 아프간은 남부 지역 몇몇 주가 자치정부 설립 움직임을 보일 정도로 칸다하르를 포함한 남부 지역에서는 공권력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각 부족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도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주축인 파시튼족 출신들로 최근에도 소수 민족인 하자라족 2명을 납치해 처형했다. 피랍된 한국인 중 일부는 하자라족 언어인 다리어를 말할 수 있지만 파시튼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만큼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반 아프간인들의 NGO에 대한 반응은 무척 우호적이었다. 카불 외곽 빈민촌인 샤포 마을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이곳에는 의사도 없고 간호사도 없다”며 “외국인들의 인도적인 활동에 대해 반감을 품는 것은 탈레반 등 일부 소수 이슬람 근본주의자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아프간인들은 피랍 한국인들이 아프간 상황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점을 지적했다. 현지인들은 “(피랍 일행이 통과한 길은) 오후에는 아프간인들도 이용하지 않고 고속버스도 거의 운행되지 않는 길”이라며 “보통 새벽에 출발해 오전에 이용하는데 오후에 다수의 여성을 포함한 무리가 통과하게 일정을 잡은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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