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장쾌한 홈런에 있다. 특히 전세를 단 한방에 뒤집어 버리는 역전홈런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LA 다저스와 오클랜드 에이스가 맞붙었던 1988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9회말 커크 깁슨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날린 역전 투런 홈런. 당시 장면은 아무리 돌려 봐도 지겹지 않다. 인생 역전과 대성공을 종종 홈런 치는 것에 비유하는 것은 그만큼 그 비유가 실감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한시즌 50개 이상 홈런이 흔한 일이 돼 버렸지만 메이저리그 초창기에는 홈런이 아주 드물었다. 시즌 단 몇 개의 홈런으로도 홈런왕에 오를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런 야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1910년 도입된 코르크 공이다. 공의 반발력이 좋아지면서 홈런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야구에 본격적으로 ‘홈런시대’를 연 선수가 바로 베이브 루스다. 1918년 시즌에 투수로 대활약 하면서 11개의 홈런을 날린 루스는 다음해 외야수로 전업하면서 무려 29개의 공을 펜스 위로 넘겨 팬들을 경악케 했다. “29개에 무슨 경악이냐”고 하겠지만 당시는 한 시즌 10개면 홈런왕에 오르던 시절이다.
루스는 통산 714개의 홈런을 치고 은퇴했으며 그의 기록은 한동안 ‘불멸’로 여겨졌다. 그 불멸성은 1974년 흑인 행크 애런에 의해 무너졌다. 애런은 통산 755개 홈런 기록과 함께 1976년 은퇴했다.
하지만 애런의 ‘홈런 킹’ 자리는 이번 달 중에 배리 본즈에게 넘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본즈는 23일 현재 753개의 홈런을 기록, 애런의 기록에 2개 차이로 바짝 다가서 있다. 3개만 더 치면 메이저리그 대기록을 갈아 치우게 되는 것이다. 주말까지 자이언츠 홈구장인 AT&T팍에서 경기가 계속 돼 대기록은 이번 주 작성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다음 주 다저스 구장서의 원정 경기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잠자리 채 들고 다저스 구장을 찾는다면 의외로 역사적인 홈런 공을 줍는 행운을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다.
본즈는 물론 이번 주에 대기록을 만들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야구 팬들의 반응이 홈과 원정경기 사이에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그의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에 있다. 본즈는 그동안 스테로이드를 알고 복용한 적은 없다고 주장해 왔다. 모르고 먹었을 수는 있다는 말인데 영악한 본즈에게 과연 그게 가능했던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알고 복용했다는 증거도 딱히 없어 어정쩡한 상황이다.
알고 먹었는지 모른 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시절 가냘프던 본즈의 몸이 거대해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홈런 수 역시 쑥쑥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73개 홈런으로 한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작성하면서 ‘배리 본즈 쇼’는 절정에 달했다. 당시 박찬호는 71호와 72호를 헌납하면서 불명예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본즈의 753개 홈런 중 박찬호가 헌납한 것은 무려 8개로 몇몇 노장 투수와 함께 가장 많다. 그러고 보면 박찬호 역시 스테로이드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 기록은 공정성에 뿌리를 두었을 때만 가치를 인정 받는다. 육상 단거리에서 바람을 등에 업고 뛴 기록은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야구선수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타석에 나서는 것은 강풍을 등에 업고 달리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기록을 세운다 해도 순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많은 야구 팬들이 본즈에 분노하는 이유는 축제가 되어야 할 메이저리그 홈런기록 경신을 혼란스런 경험으로 만들어 놓았다는데 있다. 본즈는 스테로이드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600개 이상의 홈런은 쳐 올렸을 뛰어난 타자다. 게다가 사상 최초로 500(홈런)-500(도루)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준족이다. ‘명예의 전당’행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의 불세출의 선수임에도 전문가들과 팬들 사이에는 기록의 순도 때문에 왈가왈부가 한창이다. 자업자득이다.
대학풋볼의 명장인 펜스테이트의 조 퍼티노 감독은 “명예롭지 못한 성공은 양념을 하지 않은 요리와 같아서 배고픔은 면하게 해 주지만 맛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본즈의 기록이 그렇다. 달콤해야 할 본즈의 홈런기록에 많은 팬들에게는 쓴맛을 느끼고 있는 것은 그의 명예가 얼룩진 것이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나마 메이저리그와 팬들에게 다행인 것은 맛없는 요리를 오래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점이다. 젊은 선수들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어 본즈의 기록은 수명이 몇 년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두에는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있다. 그의 나이 서른하나에 홈런이 498개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37세 되는 2013년께 본즈의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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