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표현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은 미국 민주주의 정치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알 권리를 바탕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미국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되어 왔고, 정교분리의 원칙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내용으로 하는 정부가 어떠한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시민정신을 바탕으로 미국 민주정치의 원칙으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최근 이 기본권과 원칙에 대하여 연방 대법원이 보수주의 쪽으로 판결을 내려 기독교와 관련되어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미국의 대법원이 보수주의자인 존 로버츠가 얼마 전 대법원장에 입명되면서부터 보수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 한 징후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달 25일 연방 대법원에서는 기독교와 간접적으로 연관된 두 개의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하나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교분리에 대한 판결이다.
미국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와 ‘정교분립’을 보장하고 있어서 의회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어떠한 법’이나 ‘종교의 설립을 존중하는 어떠한 법’을 제정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의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간주되는 수정헌법의 원칙이 간혹 진보-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법정투쟁의 쟁점이 되어 오곤 했다. 이에 대하여 이번에 대법원이 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 분명한 선을 그어 놓은 것이 기독교와 연관되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사건은 알래스카 주 주노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의 봉화가 주노를 지나가면서 고등학생 요셉 프레드릭이 주위와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봉이 예수를 위하여 친다’(Bong Hits 4 Jesus) 라는 배너를 들고 서있었다. 봉은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해 사용되는 물파이프다. 고등학교 여교장선생이 불법마약사용을 조장하는 행동이라고 해서 프레드릭을 처벌하였다. 학생 측은 교장의 처단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해서 고소를 했고 대법원까지 오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의 다수의견을 대표해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수정헌법 제1조는 (불법약사용 권장의) 위험을 조장하는 표현을 학생에게 허용하도록 학교에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면서 학교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의 거의 절대적인 권리이지만 학생의 안보와 복지를 침해할 위험이 있을 때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결이다.
판결문에는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아니했지만 판결의 배후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법적인 권리보다도 ‘학생의 복지’라고 하는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절대적 신앙에 대한 보수주의적인 사상이 깔려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사건은 부시대통령의 신앙바탕 주도 프로그램에 대한 고소사건이다. 부시는 대통령 취임 이후 무주택자, 마약, 알콜 중독자 등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온정적 보수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신앙바탕 주도 프로그램’(Faith-Based Initiative Program)을 실행하여 왔다. 이 프로그램이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고 있는 ‘정교분리’ 원칙에 위반된다고 하여 종교자유재단과 3인의 납세자들이 고소를 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에서도 “납세만으로 연방정부의 신앙바탕 프로그램 실행에 도전할 만한 근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라고 부시의 신앙바탕 주도 프로그램 실행에 승소를 해주었다. ‘국교분리’의 헌법적 원칙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근간이 되는 원칙이겠지만 ‘하층 시민에 대한 자비 베풂’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한 것임을 인정해 주는 판결이다.
권리보다는 복지, 원칙보다는 자비가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가치임을 이번 대법원의 두 사건 판결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국사회가 세속적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해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미국을 세운 기독교의 사상적 가치가 아직도 건실하게 깔려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백순 / 연방 노동부 선임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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