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바라지 않는 참 봉사는 우리 미덕
명문대, 좋은 직장만큼 중요성 가르쳐야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필리핀의 고위관리이자 작가였던 헐멜 누이다(Hermel A. Nuyda)가 쓴 짧은 글 중에 ‘땅의 맥박’(Pulse of the Land)라는 얘기가 있다. 외무부에 근무하면서 많은 미국 사람들과 접하면서(실은 부인도 미국 여자이지만) 느낀 미국인들의 맹점이랄까 하는 것들을 다룬 얘기인데 미국의 한 사진작가가 약동하는 필리핀의 풍경들을 담아서 책으로 발간하기 위해 3개월간 필리핀에 체류하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한 섬에 있는 화산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산에 갔다가 생긴 일을 묘사한 것이다.
사진작가는 열대성 기후에 익숙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며 산 근처까지 가다가 가지고 간 물도 다 떨어지고 해서 인근 부락의 원주민에게 물을 얻어먹었다. 미국식 위생관념 때문에 원주민이 주는 물이 의심스러워 거의 반 바가지는 바닥에 뿌려가면서 마셨지만 물맛이 하도 시원하고 맛이 있어서 3번을 더 받아서 연거푸 마셨다. 마지막 한 바가지는 머리에까지 견지며 시원해 했다. 사진작가는 사진을 다 찍고 내려오는 길에 한 계곡을 지나다가 그 근처에서 유일한 물 긷는 곳은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샘물가며, 물을 긷느라 장사진을 이룬 마을사람들은 인내로 물통에 물이 가득차길 기다리는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는 아주 간단한 얘기이다.
현대의 삶이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지만 우리 어렸을 때 아직 한국이 현대화되기 전에 아주 당연시 생각하던 것 중에 얼마나 잃은 것이 많은가! 지금은 시력이 나빠져서 그렇게 또렷하게는 보지 못하지만 아직 기억하는 것은 처음 시골에 먼 친척을 찾아갔다가 처음으로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에 가득했던 총명한 별들이라던가, 지금 몇 시쯤 되었느냐고 묻던 내가 길가면서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점심때쯤인데 잠깐 자기 집에 들러서 식사하고 가시지 않겠느냐는 시골 촌장의 모습이다. 요새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60년대에는 아직 구석구석에 여관이라든가 호텔이 들어서지 않았을 때이니까 그렇게 다니던 여행이 모두 쌀 한 자루 들고 들어가서 묵고 온 민박이었으니까.
어제는 그동안에 뽑지 않고 놓아둔 앓는 이 같았던 뒷마당 나무 두 그루를 뽑을 수 있었던 시원한 날이었다. 우리 동네 길 건너 살고 있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와서 두시간만에 해놓은 쾌거이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드는데 옛날에 그런 일을 했고 또 지금은 그의 아들이 가업으로 이어서 하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데 이 장면을 옆에서 보면서 같이 도와준 시카고에서 방학을 지내러 온 아들이 “아빠, 이 사람들이 왜 이거 그냥 해주는 거야”라고 질문했다. 사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시켜서 하면 몇 백달러가 드는 작업을 오히려 간청을 하면서 하고 있으니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벌써 몇 달 동안 우리 집 앞 잔디도 아주 깔끔하게 “그냥” 해주고 있었기에 더욱 더 감사한 일기기는 하지만.
사실은 처음 그 할아버지가 우리 집 앞 잔디를 그냥 깎아주겠다고 자원했을 때 필자도 아주 감사하기는 하지만 의아해 했다. 내가 너무 잔디 깎기를 소홀히 해서 이웃 살면서 동네 집값이 떨어질까 봐 좀 책망하는 마음에서 좀 더 자주 깎고 외관에도 신경을 써달라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매번 와서 “오늘 잔디 깎아 놓아도 되느냐”라고 물어올 때마다 좀 마음에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필자도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면서 많은 것은 같이 나누어주면서 “신세진 것”을 갚으려고 해 보았지만 한번은 괜찮다고 이제는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깎아놓겠다고 했더니 하는 말이 “당신은 우선 목사이니까 내가 해주고 싶고 또 다른 이유는 동네사람들이 우리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멸시하는 눈치이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인사도 해주고 거리낌 없이 와서 얘기도 나누어주고 해서 감사해서 하는 것이니까 염려 놓으라”고 하면서 가끔 이렇게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개운해진다 하면서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까 사실 우리 아들이 “아빠 저 사람들이 왜 그냥 해주는 거야”라고 물어 보았지만 사실 필자도 이웃에게 ‘그냥’ 해준 것이 꽤 된다는 사실이다. 마약 때문에 아내도 잃고 이아들도 빼앗긴 친구가 감옥에 끌려가 잔디가 엉망일 때 ‘그냥’ 가서 깎아준 적도 있었고 옆에 집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을 앓던 남편을 끝내 세상을 떠나고 슬퍼할 때에 ‘그냥’ 내 어깨를 빌려주었던 적도 있었으며, 또 저 밑에 사는 저능아에게 지나갈 때마다 “Hi,”하고 인사해 주고 또 얘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냥’ 얘기를 들어주었으며 하나밖에 없는 딸을 애리조나로 시집보내고 무료한 삶을 사는 할머니 집에서 거라지 세일을 할 때마다 건너가서 ‘그냥’ 얘기 좀 하느라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도 사 준 적도 있고, 옆에 집 엔지니어도 공유하는 담에 자라는 등나무가지도 대개의 경우 ‘그냥’ 같이 잘라주고 있었으니까.
이제 몇 주만 있으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선교여행을 떠난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20여명의 단원을 구성해서 ‘그냥’ 마음껏 봉사하고 오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사실 여태껏 여러 나라 여러 마을을 찾아가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냥’ 퍼주고 온 것도 여러 해가 되지만 내가 아는 목사님은 교회는 재정이 월 몇 천달러밖에 안 되지만 한동안 매년 수십명의 청년들을 모아서 사람당 수천달러의 돈을 모아 ‘그냥’ 땀 흘리며 도와주고 가지고 간 캠코더까지 다 놓고 오셨다. 그리고 ‘그냥’ 마음껏 기뻐하면서.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에 국사시간을 너무나 싫어했었다. 김춘추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통일’같지 않은 통일을 이루었다고 했을 때부터 공부를 하지 않아서 이조시대의 당파싸움과 뒤주에 가두어 아들을 죽인 왕의 얘기를 공부하면서 국사시험에는 시간이 아깝다고 백지를 그대로 내고 다음 과목을 공부한 적도 있을 정도로 싫어했었다.
그러나 요즘 새롭게 긍지를 느끼는 것은 한국의 GDP 때문도 아니고 한국이 요즘 미국 다음으로 세계 각지에서 ‘그냥’ 섬기는 활동을 많이 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도 좋은 학교 가서 좋은 직업 가지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그냥’하는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서 더욱 더 ‘그냥’ 많이 하는 대열에 앞장 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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