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상원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이라크 주둔 미군 120일 내 철군 법안이 격론 끝에 18일 부결됐다. 이 법안의 찬성표가 가결 정족수인 60표에 못미쳐 부결되기는 했지만 상원의 과반수인 52표를 얻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라크 철군문제가 점증하는 반대여론을 타고 앞으로 다가온 선거의 이슈로 크게 부각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9.11 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의 일환으로 아프간 전쟁에 이어 시작된 이라크전쟁은 처음 희망과는 달리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다. 지난 2003년 3월20일 바그다드 공습개시 이후 미군은 파죽지세로 이라크군을 격파하고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국토 대부분을 장악한 후 부시대통령은 4월9일 종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저항세력의 자살테러로 진짜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미군 희생자가 크게 늘기 시작했고 엄청난 규모의 전비가 들어갔다. 그런데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막연한 전쟁이 되고 말았다.
최근 미의회 조사국의 분석에 따르면 이라크 전비는 4년 동안 4,500억 달러가 들었다. 이 비용은 현재의 달러가치로 환산할 때 한국전쟁에 든 비용을 훨씬 초과했고 베트남 전쟁비용을 육박하는 규모라고 한다. 그리고 이라크 전비는 해마다 그 액수가 늘어나 금년도 예산에는 1,658억 달러로 계상되어 있다. 1분당 25만 달러를 퍼붓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대테러전 예산의 75%가 이라크 전비로 나가고 있다니 다른 테러전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한편 지금까지 미군 사망자는 4,000명, 부상자는 2만6,500명이니 매일 3명씩 미군이 죽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니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여론이 좋을 수가 없다. 개전 초기에 25%에 불과했던 반전 여론이 지난 연말을 계기로 60%를 넘어서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이런 반대여론에 직면하여 새로운 이라크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이끄는 이라크 연구그룹이 발족하였다.
이 연구그룹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전투업무를 지원업무로 전환하고 2007년부터 철군을 개시할 것을 권고했으나 부시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철군은 있을 수 없다는 ‘마이 웨이’만을 고집했다. 여론도 듣지 않고 전문가들의 권고도 묵살하는 것은 노무현대통령과 닮은꼴이다.
이렇게 부시대통령이 고집으로 끌고 가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아까운 젊은 목숨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국민들에게는 전의가 없다.
얼마 전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져도 ‘관심 없다’가 43%, ‘실망한다’가 33%, ‘상심할 것이다’ 22%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국이 져도 괜찮다고 국민들이 생각하는 전쟁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또 이런 전쟁을 무엇 때문에 해야 할 것인가.
이라크 전쟁은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이라크가 테러를 지원하고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이유는 타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 테러전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된 전쟁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여론이 전쟁에 대한 찬성에서 멀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을 지지했던 동맹국들도 점점 떨어져 나갔다.
이런 전쟁에 미국이 막대한 비용과 아까운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재정적자를 누적시켰고 많은 나라로부터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여 국제 지도력이 약화되었다. 얼마 전 유럽인들의 여론조사에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지적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 전쟁이 테러를 없애기 보다는 테러 위협을 증가시켰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요즘 국토안보부는 미국내 테러 위험성을 연달아 경고하고 있다. 그 규모가 매우 클 것이라고 한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6년간이나 했는데 이제 와서 무시무시한 테러 위험이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테러와의 전쟁을 아주 잘못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은 제대로 하지 않고 이라크 전쟁 같은 엉뚱한 전쟁에 신경을 썼다는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이라크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제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해야 한다. 미국이 세계 모든 나라의 신뢰를 얻어 테러를 없애는데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만 가지고 국민이 외면한 전쟁을 하다가 정말로 큰 테러가 발생한다면 이는 부시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기영 /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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