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있는 바티칸 언덕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대지의 여신’ 시벨레를 섬기던 성지였다. 기원 64년 로마 대화재 때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함으로써 기독교의 성지가 됐다. 초대 교황 베드로도 여기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것으로 돼 있다.
바티칸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시스틴 채플에 들어가 보면 우선 그 규모의 웅장함과 뛰어난 건축미에 압도당하게 된다. 교황의 거소이자 교황의 선출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베르니니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대작이 모여 있는 예술의 보고다. 괴테는 일찍이 “시스틴 채플을 보지 않고는 인간이 어떤 일을 이룩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호화로움의 극치에 감탄하면서도 과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교회가 이토록 화려해야 하는지 한 가닥 의심이 든다. 지난 2,000년 가까이 가톨릭교회가 저질러온 행적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주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가 가르침과 너무나 다른 경우가 많았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교회는 ‘이 땅의 저주받은 자들’을 위한 피난처 역할을 해왔지만 콘스탄틴 대제의 즉위와 함께 권력을 쥐면서 교회는 피압박자에서 박해자로 변신했다.
타종교는 물론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이단으로 몰린 종파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고 7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예루살렘을 피로 물들였으며 동성연애자와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불태워 죽였다.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를 무릎 꿇리고 ‘우주 무한론’을 편 브루노를 화형에 처했으며 교회의 개혁을 촉구한 루터를 파문했다. 즉결 심판과 처형의 모델인 ‘오토 다 페’(auto da fe)를 고안한 것도 교회며 수백 년 간 종교 전쟁을 일으켜 유럽을 황폐케 한 것도 교회다. “유럽의 발전사는 기독교와의 투쟁사”라고 한 버트랜드 러셀의 말은 사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 가톨릭의 수장인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0일 로마 가톨릭 교회만이 “유일, 진정한 기독교 교회” 이며 다른 모든 기독교 종파는 결함이 있거나 제대로 된 기독교가 아니라고 밝혔다. 개신교와 그리스정교 등 다른 기독교 종파들이 가톨릭교회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으며 종파간의 화해를 모색한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입장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 교황의 발표가 있은 지 며칠 후 로저 마호니 LA 대주교는 508명에 달하는 아동 성추행 피해자들과 6억 6,000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배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4년 6개월간 끌어온 성추행 피해 배상 소송은 종결됐지만 그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5년 전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이 터진 이후 가톨릭 교구가 보여준 모습은 진정한 참회보다는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는데 더 급급했다. 해결에 이토록 오랜 세월이 걸린 것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내놓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200여 성직자 중 5~6명에 관한 자료를 받아내는 데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이런 성범죄가 LA만이 아니라 미전역에 걸쳐 저질러졌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 아동과 배상액만 보더라도 보스턴 983명에 1억 5,700만 달러, 포틀랜드 315명에 1억 2,900만 달러, 켄터키 주 코빙턴 350명에 8,500만 달러, 샌프란시스코 113명에 7,300만 달러, 켄터키 주 루이빌 250명에 3,000만 달러 등 피해자 수가 3,000명에 배상액은 10억 달러가 넘는다. 가톨릭 교단이 중병에 걸려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런 와중에 나온 교황의 가톨릭 우월론은 정말 뚱딴지같은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가톨릭 신학의 뼈대 역할을 하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참회’가 필수 선결 조건이라고 가르쳤다. 참회(contrition)는 라틴어로 ‘산산이 부서진다’는 뜻이다. 잘못된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후에야 거듭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교황은 우월론을 주장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가톨릭이 저질러온 범죄에 대한 참회부터 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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