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주 한인들에게 미국은 “선택한 나라”이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지구상에서 가장 공정하게 경쟁을 할수있고 믿을 수있는 나라로 생각하고 살아오는 곳. 그런데 요즘은 이 믿음이 많이 흔들리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수많은 인명과 돈이 들어가고 있는 이라크전은 끝이 보이질 않고, 9-11 이후에는 미국의 소위 “hard power” 에 대한 확신이 눈에 뜨이게 줄어들고 있다.
이라크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거 지는 전쟁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늘어나고 있다. 해외주둔 미군들은 거의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달한 것 같고, 중국은 커지는 경제를 바탕으로 이젠 노골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라이벌로 부상하는 것이 보이고, 약해졌던 소련은 다시 슬 슬 경쟁국으로 변해 가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도 해결이 과연 깨끗하게 될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란도 북한 뒤를 밟아 핵개발을 서둘고 있고, 옛날에도 믿을 수 없던 유럽은 이제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동반자가 아니다. 적어도 조지 부시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은 그럴 것처럼 보인다. 아랍지역 나라들과는 이제 민주주의를 수출한다며 십자군처럼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끝난 것 같다. 이 제 남미에서도 차베즈같은 반미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거의 확신하게 된 지구온난화는 미국의 세계에서의 지도력을 아주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정책으로 팔레스타인 쪽으로부터는 신용을 거의 잃어버린 외교는 안 그래도 어려운 미국의 세계에서의 신용을 거의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어떤 나라들은 도덕면에서 형편없는 중국보다 미국이 더 장래의 세계평화에 위험한 나라로 말하기 까지 한다.
미국의 장래를 믿고 살아도 될까. 우리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필자는 미국에 과연 이 어려움을 헤치고 나올 힘이 있는가를 보려한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산업은 일본과 독일에 비해서 너무나 생산성이 형편없었다. 자동차와 전자산업 쪽에서의 품질도 일본에 뒤떨어져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이기심만 따라가고 열심이 일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경영자들은 자기 자리보전에 바쁘고 단기적 경영성과에 따른 보너스에 치중해서 장기적 국제경쟁력 향상에는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1980년 대 초부터 미국의 산업계에서는 이러다간 안 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긴 변화와 혁신의 시대가 왔다.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한 생산성 향상 움직임은 일본과 독일의 좋은 생산과 경영기법을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는 회사들로 퍼져갔다. 지금 미국의 생산성은 선진국 중 가장 높고 일본과 독일에서 배워온 좋은 경영기법들은 이제 미국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실천하고 있다. 최근까지 우리가 누려온 저인플레 하에서의 미국경제성장은 이때 미국 산업계에서 애써 연구 실천한 생산성 향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영혁신에서 코스트 절감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방법들의 상관관계를 공부하고 이의 실천과정에서 미국산업에서의 리더기업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미국의 저력을 가슴깊이 느낀 사람들 중 하나이다.
미국의 산업들에서 쓰고 있던 경영방법보다 일본의 방법들이 더 낫다는 확신이 생긴 다음에는 크고 작은 거의 모든 미국기업들에서 최고경영자부터 기초단위의 직원들까지 이들은 알량한 자존심에 상관하지 않고 더 좋다는 방법들을 일본식이건 독일식이건 성실히 배웠다.
필자는 지금도 기업들의 그 현장에서 만난 최고경영자들, CFO들, 생산관계자들의 눈과 표정들을 기억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와 가장 강한 산업계란 프라이드에 묶인 게 아니라, 문제가 있으니 해결해야 한다는 열정에 차있던 그들을 알고 믿는 마음으로 미국의 장래를 신뢰하는 것이다.
미국의 힘은, 문제가 있을 때 이 커다란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Self-correction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 힘은 미국처럼 건강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이 튼튼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저력인 것이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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