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지난 4일, “한반도 평화 비전”을 발표했다. “상호주의”라는 낱말은 어디에도 없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대한 각오가 돋보인다. 먼저 돕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300만 극빈인민을 위하여 연간 15만 톤의 쌀을 무상으로 준다. 산업단지의 발전 설비 현대화를 지원하고, 제한적이지만 전기도 보내준다 . 서울-신의주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김포-순안 정기항로와 한강-임진강 수로까지 개설한다. 단계적인 남북한 사이의 전면적인 자유왕래까지 추진한다. 믿어야 할 거대야당의 다짐이다. 북한의 방송과 신문도 전면 개방하겠다는 대목은 대단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북측에서 손 마주잡아 주어야 될 사안들이지만, 남북한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서울과 평양에 ‘경제대표부’를 설치하여 남북 사이의 경제협력을 북돋운다. 연 3만명 규모의 북한 산업연수생을 받아들인다. 금강산-설악산 관광특구와 파주, 철원등에 ‘대북 경제특구’를 조성하고, 한반도 종단철도(KTR)를 연결한다.
하나같이 무게를 더한다. 얼마쯤은 거칠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당장 끝장을 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5년을 두고 펼쳐 보여주겠다는 청사진이다.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해 주며, 묵묵히 지켜 볼 인내가 필요하다. 한나라당은 비핵화 평화정책을 위한 ‘남북정상회담’을 택했고, 한반도의 전화(戰禍)가 끝났음을 알리는 남,북,미,중 4자간 ‘종전 선언’과 휴전협정이 아닌 “평화협정”체결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한반도 통일과 대북문제에서 보여주던 수구, 보수의 굴레를 벗는 모습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전략적 변신이라 해도 좋다. 그것이 한반도의 앞날을 움켜쥐겠다는 한나라당의 결단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대북 문제, 한반도 문제를 두고 기승부리던 남,남 갈등이나 보수, 진보의 반목도 자지러들게 되었다. 이제 대북 햇볕정책에는 여야가 없게 된 것이다.
있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민족의 열망이 있고, 오는 12.19 대선에서 이기겠다는 정치권의 승부가 있을 뿐이다. 승패가 어찌되던 정치 권력이 확 바뀌는 대통령 선거다. 정치 집단들이 벌이는 단판승부, 승자독식이다. 국민들로서도 5년 만에 다시 찾은 기회다. 그동안 쌓인 불만과 욕구가 있다면 확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렇다고 “화풀이 선거”가 되어서는 내일이 없다. 6공 제5기, 제17대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민족사적 책무와 풀어야 할 시대정신을 물어야 한다. 12.19 선택은 ”선진통일 한국”의 내일을 열어 갈 지도자를 택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 엄중한 선택의 짐은 바로 국민의 몫이다. 오늘을 사는 국민들의 눈높이와 정치의식이 좌우할 것이다. 한 표, 한 표의 바람은 말 없이 흐름을 이룬다. 어느 때는 광풍노도(狂風怒濤)가 되어 표(票)를 몰고 다닌다. 깨어 한 순간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 지나가는 행운의 앞머리채를 움켜쥘 수 있어야 승리의 축배를 들게 된다. 이같이 절박한 흐름을 읽은 한나라당 당 차원의 결단이 바로 ”한반도 평화 비전”일 것이다. 박수를 보낸다. 민족의 명운을 가름하는 열정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왕 보수진영의 질책이 하늘을 찌른다. ”대북 굴종”이니, ”북한에 백기투항하는 희극적 비극”이니, ”반역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비난한다. “좌파 향도로 나선 한나라당에 경고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국민행동본부는 “망국적 대북정책을 즉각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입장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표를 모아야 하는 경선후보들로서는 너무나 답답할 것이다. 그런 탓인지 캠프 대변인을 통하여 적극 환영했던 이명박, 박근혜 두 경선후보의 말이 달라진다. 박 후보는 8일, “(한반도 평화 비전은)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핵문제를 분리해 여러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고 한 발 뒤로 물러난다. 9일에는 이 후보측마저 “당의 예비후보로서 당의 공식입장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방법론상에서 (당과 캠프가) 부분적인 차이가 있다”고 밝히는가 하면 “북한의 비핵화 과정과 개혁, 개방 단계에 맞춰 경협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상호주의를 적용하자는 것”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해한다.
8월 19일, 한나라당 경선 이후를 기대한다. 북미간의 의미있는 몸짓이 몰고 올 변화와 이보다 한 발 앞서야 할 “새로운 햇볕정책”의 결실이 어떻게 맺어질 것인지도 지켜볼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북악의 높은 기상이 보여 줄 큰 그림을 믿을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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