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요즘 한인들의 안방극장에는 ‘쩐(錢)의 전쟁’이라는 TV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로부터 이처럼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라 할 수 있는 ‘쩐’ 즉 ‘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에서 주인공 금나라는 마 동포라는 한 악덕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아버지가 그 돈을 갚지 못해 시달림을 당하다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린 뒤 어머니마저 화병에 죽자 복수를 하기 위해 마 동포 사장 밑에 들어가 사채업자로 변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 동포 사장이 그동안 벌어 사무실 마루 밑 지하금고에 숨겨둔 현금 50억원을 발견한다. 누가 가져갈 새라 은행도 못 미더워 차곡차곡 쌓아올린 마 동포 사장의 돈, 거액의 현금은 보기만 해도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못가진 자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악덕 사채업자들은 보통 채권자들이 돈을 못 갚으면 피를 뽑아서, 심지어는 죽으면 신체 포기각서라도 받아 장기를 팔아서 받아들인다고 할 만큼 돈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 드라마의 마동포 사장도 그렇게 해서 모아둔 지하방 금고에 드나들 때마다 돈 냄새를 맡으면서 “어이구, 내 사랑하는 새끼들아” 하며 돈이 지닌 마력에 흠뻑 빠져 산다. 이 엄청난 돈을 둘러싸고 주인공 금나라, 그리고 그의 친구, 또 다른 사채업자 간의 사이에 벌어지는 다각색의 쫓고 쫓기는 장면들은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시청률 1위에 이를 만큼 인기가 있는 이 드라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버리면서 돈 벌기에 혈안인 사채업자들의 피도 눈물도 없는 돈벌이 속성,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사채업자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그야말로 쩐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마동포의 돈을 손에 넣었던 주인공 금나라는 다시 이 돈을 조폭에게 빼앗겼다 또 다시 탈취해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탁하는데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식장 밖에서 돈을 빼앗긴 마동포가 휘두른 복수의 심판에 의해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다.
돈에도 인생이 들어있음을 강조하는 이 드라마는 돈은 남에게 해를 안주는 방법으로 땀 흘려 노력해서 벌고 또 그렇게 번 돈을 좋은 일에 쓸 때 가치가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돈이란 우리가 살면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목적이 되어서 사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 속성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돈 앞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도덕이나 인간의 기본도 저버린 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돈 앞에서 가족이고 부모형제고 친구고 이웃이고 없다.
옛날 100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만지는 걸 아주 천하게 보았다. 그래서 양반들은 손에 돈을 만지지 않고 다 밑의 종들에게 맡기고 부동산 살 때도 모두 종의 이름으로 할 만큼 돈에 대해서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 것에 비춰 보면 지금 사람들은 서구의 자본주의 영향으로 다 천한 사람들과 같이 돼 버렸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돈을 더 많이 주는 직장으로 옮기면 명분이 없을 경우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었다. 그런 것이 요즘은 이것을 오히려 아주 당연스러이 여기며 받아들인다.
한국의 한 TV프로그램에 사회의 이모저모에 관한 분석 프로그램이 있는데 20년 전만 해도 남자가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돈 많은 여자가 돈은 없어도 젊은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비율이 꽤 높았다. 그런데 요사이는 돈 많은 여자가 돈 없는 젊은 남자와 기꺼이 결혼하겠다는 비율은 불과 5% 뿐이고 젊은 남자가 나이가 많더라도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겠다가 50%를 차지했다.
이는 결국 돈이 최고인 세상임을 단편으로 말해 준다. 그래서 요즈음엔 형제사이에서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돈 때문에 갈라서고 이혼할 때 보면 돈 몇 푼 더 갖겠다고 하다가 평생 원수가 돼버리는 예가 많다. 그 옛날 한국의 좋은 정신이나 사상이 이제는 눈에 보이는 물질 보다 더 못한 세상이 돼버렸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던 최영장군의 그 고고한 정신은 다 어디 갔는가?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을 재투자하고 또 남은 돈은 세상에 환원함으로써 돈을 값어치 있게 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쩐의 전쟁’은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사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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