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목회학박사)
사람이 밥만으로 살 수 있는가. 즉, “밥만 해결되면 살아갈 수 있는가”란 질문이다. 이 말을 다시 확대해 풀면 현실적인 문제, 곧 “의식주만 해결되면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가”란 질문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동물 중 하나이다. 야생 동물은 먹을 것만 있어도 살아간다. 물론 곰처
럼 겨울에는 겨울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의 주(住), 즉 집에 해당하는 동굴 등도 필요하지만 말이다.
사람은 밥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태어난 것 같다. 이것이 사람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가 아닐는지. 생물학적으로 보면 다른 동물과 사람은 똑 같다. ‘똑 같다’란 말은 신체구조상 살아감의 모든 역할관계가 사람이나 동물이 하나같이 같다는 얘기다. “먹고 싸고 자고, 또 먹고 싸고
자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나 동물이 무엇이 다를 게 있단 말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어떤 때는 다른 동물이 사람인 나보다도 더 낳은 부분도 있지 않나 생각되어지는 경우도 많다. 개를 보라. 얼마나 충성스러운가. 주인을 위해 한 결 같이 죽을 때까지 충성하는 개를 보면 사람보다도 더 낳은 구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개는 먹을 것만 주면 된다. 잠잘 곳만 마련해 주면 된다. 그 것 뿐이다.
허기는 요즘 개들은 보디가드 역할을 하며 주인을 보호해주는 충견(忠犬)도 있지만 주인, 즉 사람의 애완용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용 개들도 많이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애완용 개들은 주인의 지위와 부(富)의 관계에 따라 가난한 사람보다 더 호화스
럽고 사치하게 살아가는 개들도 있음에는 더 할 말이 없다.
개야 어찌 됐건,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엔 의식주(衣食住)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체주의가 아닌 이상 몸에 걸쳐야 할 옷이 있어야 한다. 옷이야 선사시대(先史時代), 즉 역사가 있기 전의 시대엔 사람이라 이름 붙여진 동물들도 옷이 없었을 것이다. 벌거벗고 다녀도 누구하나 간섭하거나
욕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전부 벌거벗고 다니는데 누가 누구를 욕하겠는가.
미국엔 누드(nude)족, 즉 벌거벗고 생활하기를 좋아하는 나체주의자들이 있다. 단체도 있다. 가입한 사람들도 꽤나 있다. 언젠가 뉴스를 보았더니 요즘 나체주의 단체엔 젊은 사람들이 별로 가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 든 사람들만 나체주의 촌에 몰려 나체촌은 인기가 시들어져가고 있다고 한다. 정말 나체주의자들은 자연주의를 흠모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요즘 옷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것은 옛말이다. 패션이라고 하여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게 만들고 입느냐에 따라 대박이 터지는 시대다. 옷은 돈과 연관돼 있다. 옷으로 대박을 터트려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많다. 계절마다 패션쇼가 열린다. 특히, 뉴욕엔 패션애비뉴(맨하탄 7th Ave.)도 있을 정도다. 의(衣)는 필요 이상으로 작용해 사람이 옷에 끌려가는 처지가 됐다.
식(食), 즉 ‘먹을거리 혹은 먹 거리’는 인간과 다른 모든 동물의 가장 필요한 요소다. 왜냐하면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옷은 입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먹지 않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죽는다. 그러니 살아있는 생물들에게는 먹을거리가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가 된다. 어쩌면 모든 동물을 포함한 생물들은 “먹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주(住). 날아다니는 새들도 둥우리, 즉 집이 있다. 그들도 집을 지어 새끼를 낳고 키운다. 하물며 사람이랴.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자기 집을 소유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시대다. 허기야 트럼프처럼 수십 수백채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부자들도 있다만. 평생 전세방 혹은 랜트(rent)에 매여 살다 자기 집 한 번 소유하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도 많음엔 어쩌랴.
의식주. 현실이다. 하나도 허술하게 생각할 수 없는 삶의 피 같은 필수 요건들이다. 그러나 사람이 의식주에만 매달려 한 평생 살아간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이상(理想)은 어디에다 두고 살아가야 하나.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을 도와주는 섬김과 봉사는. 땅의 문제가 아닌 하늘에다 삶의 가치를 두면 안 되나. 직립인간. 꼿꼿하게 서서 위와 앞을 바라보며 더 전진하도록 살아가게 지어진 사람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무언가 좀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보다 차원 높은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개처럼 충성스럽거나 애완용 장난감이 아니 된다 하더라도, 1차원의 의식주 문제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좀 더 진지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일까. 어느 친구의 의견이다. “사람이란 밥만으로도 살아 갈 수 없고 사랑만으로도 살아 갈 수 없게 지어진
존재다. 그러므로 사람은 삶이란 그릇에 사랑과 밥을 함께 버무려 먹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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