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人口)는 바로 운명이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구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인구의 이동은 한 지역사회는 물론 한 국가를, 때로는 한 문명까지 송두리째 바꾼다. 때문에 인구통계학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주목을 끄는 보고가 나왔다. 미국이 정치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의 마이클 바론이 일전 월스트릿 저널에 기고한 내용으로, 인구이동을 그 변화의 주원인으로 파악했다.
‘프로스트 벨트’에서 ‘선 벨트’로. 종전 미국이 보여 온 인구이동의 패턴이었다. 더 이상 그게 아니라는 거다. 새로운, 그리고 복잡한 패턴의 인구이동이 이루어지면서 각 지역사회의 운명이 엇갈린다. 동시에 미국의 정치적 라인업에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다는 지적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를 보자. 연방하원 의석수는 계속 늘어만 왔다. 그러나 더 이상의 의석수 증가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왜. 인구가 답이다. 계속 증가만 해왔다. 그 인구가 제자리걸음을 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사람들은 계속 몰려든다. 그러나 못지않은 인구 유출이 이루어진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대부분이 이민그룹이다. 나가는 사람은 미국 본토인들이다. LA,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 등지에서 일고 있는 현상이다.
뉴욕, 시카고, 워싱턴, 보스턴, 마이애미 등 다른 대부분 대도시권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이후 6년간 이 대도시권에서 390만에 이르는 본토인들의 유출이 이루어졌다. 그 공백을 채운 게 이민그룹이다.
본토인들은 그러면 어디로 갔을까. ‘하트랜드’로 불리는 지역이다. 남가주의 경우 ‘인랜드 엠파이어’가 그에 해당된다. 라스베가스, 피닉스, 올랜도, 애틀랜타 등도 그 대표 지역으로, 하나같이 급격한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대도시권에서 하트랜드로의 대대적인 인구이동. 무엇을 의미하나. 미국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의 선거인단 수와 플로리다의 선거인단 수는 오는 2012년이면 29 대 29 동수가 된다. 왜. 인구가 역시 그 답이다.
본토 미국인들은 왜 대도시 지역을 기피하고 있나. 주택가 앙등이, 과중한 세 부담 등이 그 이유로 지적된다. 또 다른 ‘숨겨진 이유’가 있다. 몰려드는 이민그룹에 질려서다.
관련해 우려되는 사태가 LA 등 대도시권이 분파 사회가 될 가능성이다. 바론도 이 점을 지적했다. 이민그룹과 일부 ‘수퍼 리치’(super rich) 계층만 남게 되는 대도시권은 멕시코시티나, 사웅파울로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양극으로 나뉘었다. 그 가운데 여러 이민그룹의 이해가 상충된다. ‘발칸’화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기서 제기되는 주장이 미국은 거대한 ‘문화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본토인들의 대도시 탈출현상도 그렇다. 미국적 전통을 거부하는 새 이민그룹, 그들을 피해 대도시를 떠난다. 때문에 문화전쟁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이민법개혁이 좌절됐나. 일부는 역시 문화전쟁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브룩스가 그 같은 입장으로, 이민문제는 근본에 있어 문화문제라는 주장이다. 공화당원 중 36%가 이민법 개혁안을 지지했다. 민주당원의 지지율은 33%. 무소속은 31%이고. 이런 여론조사를 감안할 때 정파적인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 입장 차이가 결국은 문화전쟁을 불러왔고, 그 여파로 이민에서, 자유무역, 그리고 해외개입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미국은 양분된 시각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 쪽은 대도시 중심의 개방형 코스모폴리탄 세력이다. 다른 한쪽은 미국적 정서에 더 충실하고자 하는 로컬지향의 내셔널리즘 세력이다. 그 두 세력 간의 문화전쟁은 2008년 대권 향배와 맞물려 더 치열해진다는 전망이다.
큰 그림으로 보면 문화전쟁은 ‘아메리칸’이란 무엇인지, 미국적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으로도 해석된다. 기독교 정신(christianity)에 바탕을 둔 미국적 가치관, 건국 시조들이 물려준 헌법정신 등을 어떻게 시대적으로 소화해 내는가 하는 몸부림으로써.
그건 그렇고, 한 단어가 새삼 머릿속을 맴돈다. ‘코리안-아메리칸’이다. 문화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코리안-아메리칸’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그게 그리 쉽지 않아 보여서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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