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지난 1997년 DJ와 이회창이 대결한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지역주의가 강하고 보수 성향이 지배적이던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국민 정서에 DJ 불가론이 짙게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회창 쪽에 줄을 섰고 이 후보 자신도 대통령이 다 된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DJP연합이라는 구도가 DJ의 지역성과 사상성의 취약점을 보완하여 지지기반을 넓혀줌으로써 선거 결과는 DJ의 승리로 끝났다.
그 후 2002년 대선에서도 또 이런 이변이 발생했다. 이회창 후보는 이미 지난번 대선에서 DJ와 맞붙어 억울하게 지나시피 한 지명도가 있었는데 반해 여당쪽에는 그에 필적할 인물이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이회창 후보의 당선은 따놓은 당상으로 보였기 때문에 사람이나 돈이 모두 그에게 모여들었다. 이 후보 자신도 낙선하리라고는 아마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노무현이 튀어나와 돌풍을 일으키면서 막판에 판세를 뒤집고 말았다.이처럼 선거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선두주자로 잘 나가던 후보라 할지라도 어떤 악재로 분위기가 바뀌면 권외로 밀려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의 표심은 여론에 따라 널뛰듯 하는 변덕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보는 면밀한 선거전략이 있어야 하고 그 보다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하여 끝까지 자세를 낮추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는 12월의 한국 대선에서는 정권교체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잘 한 것은 없지만 노무현 정부와 여당이 막말로 워낙 깽판을 쳤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물론 현정부의 지지기반인 진보 그룹과 학생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니 정권 교체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그래서 누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어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후보 자리를 놓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경선전이 날이 갈수
록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쟁 초기에는 양쪽이 모두 네가티브 공격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경선전이 본격화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흠집 내기가 심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정책문제를 놓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정책은 온데간데 없고 개인 비리에 대한 폭로전과 고소사태까지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선전을 보고 있노라면 최후 결전을 보는 느낌이다. 최후 결전은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 사생결단의 싸움이다. 국가간에 승패를 겨루는 전쟁은 이런 최후 결전이다. 대통령 선거의 본선도 최후 결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을 잡느냐 못 잡느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의 후보 경선은 최후 결전이라기 보다는 결전에 내보낼 선수를 뽑는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후보 경선에서 이긴 사람은 본선거에 나가 상대 정당의 후보와 싸우게 되고 경선에서 진 사람은 이긴 후보의 본선거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 장악이므로 정권 장악이 경선에서 이긴 사람에게나 진 사람에게나 다같이 공동목표인 것이다.그런 점에서 폭로와 비방, 고소로 얼룩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경선전은 도를 넘고 있다는 느낌이다. 후보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흠집만 들춰내다 보니 본선거에서 타당 후보가 해야 할 일을 자기들끼리 하고 있는 것이다.
두 후보가 좋은 점이 많은 후보들인데 국민들에게 그 좋은 점은 선전되지 않고 나쁜 점만 각인되고 있다. 이에 비해 가만히 있는 범여권의 예비주자들은 흠이 드러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셈이다. 또 국민과 당원을 상대로 지지를 설득하는 경선전이 아니라 후보간의 치고 받는 싸움은 국민을 실망시켜 외면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이런 경선전은 쥐 잡으려다 독을 깨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나라당은 숨을 고를 때가 되었다. 앞으로 한달 이상 남아있는 경선 기간을 이대로 계속 치닫는다면 두 후보가 모두 죽는 싸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이나 역전패 한 한나라당이 이번에 세번째 역전패를 한다면 그 책임이 두 후보에게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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