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장이라고 알려진 월스트리트의 많은 직장은 엄청난 격무를 요구한다. 일주일 근무가 60시간이라는 것은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하려면 그렇게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 항상 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잠 좀 실컷 자보는 것이다. 점심시간이라고 동료들과 느긋이 주위의 레스토랑을 다니는 것은 아주 드문 사치이다. 일하면서 샌드위치 하나 먹거나 잠시 시간 내어서 지하주차장 자기차 안에서 새우잠 자는 것이 다반사라 한다.
주위의 젊은이들 얘기를 듣거나 때때로 캠퍼스에 들리는 졸업생들에게서 듣는 얘기는 이 세상 어디에도 “공짜란 게 참 드물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돈을 많이 주는 곳에선 그만큼 인생이 힘들어진다.
이들 격무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꿈이 50세에 조기은퇴 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이 된 조기은퇴는 50세나 그전에 은퇴해서 와이너리 하나 가꾸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 조기은퇴라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돈을 덜 벌어서 만만치 않은 게 아니라 돈 벌고 은퇴한 다음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아니더라도 혹시 조기은퇴의 ‘꿈’을 갖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일반적인 조언을 모아보았다.
첫째, 주위의 사람들이 조기은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이 아니면 은퇴 후 첫해가 괴롭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늦게까지 일한 분들은 어머니 보기에 이 자식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어려움을 일찍 극복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엔, 많아진 자유시간 때문에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 때우기 위해 잘못하면 엉터리 새 비즈니스 투자를 할지도 모르고 좋지 않은 주식들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파트타임 일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원래가 게으르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열심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어진다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갑자기 제2의 인생에 대한 결정을 하지 말고 은퇴 첫해는 느긋하게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하던 것을 즐기는 정도가 좋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동안은 돈을 쓸 수가 없다. 이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경우와도 같은데, 공부안하는 아이가 공부 열심이 하는 아이보다 돈을 많이 쓰는 것과 같다. 자유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보통 은퇴에 대한 재정상담을 하는 이들이 은퇴전의 70~80프로의 돈이 드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도록 조언하는데, 사실은 재정적으로 안정된 은퇴자들의 반 이상이 일할 때와 같은 수준의 돈을 은퇴 후에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여행인데 여행은 돈이 든다.
은퇴와 재정문제를 생각하다보면 다른 때보다 나이가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이 서글픈 게 아니라 안심이 되는 이상한 발견을 하게 된다고 한다. 50이면 아직 인생이 많이 남았고 그래서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처하는 방법 중에 은퇴 후 일을 하되 자기가 평소 좋아하던 것을 하면서 돈도 버는 방법이다.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고 손재주도 있는 분들이라면 자전거수선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일에서 오는 보람을 강하게 느끼고 있던 분들이라면, 특히 상당히 높은 보수가 자기의 가치를 느끼게 하던 분들은 은퇴 후 자기의 가치를 딴 방법으로 계속 느끼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친구가 좋은 것은, 같이 늙어가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있는 분들은 좋은 면도 있지만 어려운 면도 있는데, 은퇴 후 계속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면 스트레스가 너무 높아지는 것 때문이다. 서로 간에 여유 있는 공간이 없어지면 서로가 답답해질 수가 있다. 서로의 공간에 대해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퇴 후 첫 몇 해가 부부사이의 가장 스트레스 높은 기간이라는 여러 연구발표가 있다. 같은 일을 즐기는 부부라면 이 어려움을 상당 히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은퇴라면 모든 것을 놓고 쉽게 살 수 있으리라던 고정관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은퇴도 상당한 준비가 필요한 쉽지 않은 과정이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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