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일(우정공무원)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듯한 이민생활 몇 사람이 차를 들면서 있었던 일이다.K친구가 화두로 차를 교체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모 회사 02년형을 두달 전 07년 신형으로 바꾸었다는 말에 듣기 민망했던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S친구가 받는다.
“차는 교통수단에 불과하고 그것도 별 말썽 없는 차를 바꾸는 것은 낭비이고 사치”라고 한 핀잔성 응대에 설전이 시작, 분위기가 탁해지니 L친구가 가로막는다. ‘광에서 사는 쥐가 있고 외양간에서 사는 쥐가 따로 있다’는 명언을 한다. K는 부인의 가게가 괜찮아 지인들에게 은연중 허세를 조금 부려본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한 주 동안 땀 흘리면서 허리가 휘청하게 일하고 받은 주급 중 알뜰히 절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말 도박장으로 직행하거나 카페나 노래방에서 소진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절제하지 못하다가 정신은 물론 몸까지 망가져 이곳 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사례도 보았다.
이렇듯 소비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우상인 돈이 필요한 것이다. 요즈음 ‘쩐의 전쟁’이 매우 높은 시청률을 나타내는 이유도 돈 때문에 죽고 사는 혈투를 볼 수 있어서이며 영화 ‘타짜’가 수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돈벼락을 바라는 인간의 한탕주의 기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과소비는 가진 자 편에서는 향락과 쾌락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고 못 가진 자의 입장에서는 낭비와 허영심의 노출이라고 힐난, 매도하면서 자위하는 것이다.
시중 이자율을 내려 쉽게 차입을 유도하면 소비를 증대시킬 수 있으나 유동성 증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되어 물가 상승 소지가 있으며 반대로 금리를 인상하면 주머니 여유자금들을 저축으로 유도, 절약은 할 수 있으나 소비(내수) 위축으로 경기가 둔화되는 현상을 가져와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이렇게 절약과 소비 중 어느 것이 미덕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경제 전문가들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많은 한인들은 허리띠를 죄었던 과거 보릿고개 시절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근검절약이라는 현실적 이론을 미덕으로 삼아야 하는 처지이다.
소비와 절약에 대한 학설로 잘 알려진 두 경제석학의 주장은 이렇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경제학자 J.M. Keynes(케인즈) 교수는 국민이 소비를 많이 해야 생산이 증가하고 고용이 늘어 국가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하여 ‘소비는 미덕’이라 했다. 현재까지도 세계 경제학계 제 1인자로 추앙받는 학자이다. 반면 오스트리아 출신 Hayek(하이액)교수는 70년대 초 두 차례 오일쇼크 이후 각국은 절약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주장, 1974년 화폐와 경제변동이란 이론을 전개해 ‘소비는 미덕(절약이 미덕)’이란 학설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이다(런던대, 시카고대, 찰스부르크대 교수 역임).
절약의 상징이 되고 규범이 될만한 사례로 박정희 대통령은 삼복더위에 집무실에 런닝셔츠만 입고 부채질을 하며 유류 절약에 솔선수범을 보였으며 정주영 회장도 70년 초 나왔던 흑백 TV를 타계 직전까지 사용하고 한 양복을 20년 넘게 입었다고 했다. 또 얼마 전 서거한 최규하 대통령이 60년 초에 나왔던 금성 라디오를 50년 이상 청취하고 달동네에서나 볼 수 있던 연탄 보일러를 수십년간 사용하였다는 보도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면서 듣는 이들의 콧등을 찡하게 하고도 남는다.
외국인들의 자린고비 정신은 더 지독하다. 세계 4위 부자 아이키아(IKEA)창시자 Ingrar Kamprad는 재산이 280억 달러이고 32개국 202개 매장에서 9만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다. 그는 15년 된 중고차를 지금도 몰고, 비행기는 항상 이코노미석을, 평일 출근시에는 어김없이 지하철을 이용하며 샤핑할 때마다 할인쿠폰을 챙기고 회사 전직원들은 의무적으로 이면지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세계 2위 부자 워렌버핏, 자기 재산 85%(370억 달러)를 사회에 내놓기로 한 그는 너무 닳아서 색까지 바랜 양복과 지갑 및 낡은 구두를 항상 사용하고 평범한 주택가 2층집에서 살면서 낡은 중고차를 손수 운전한다는 소박한 모습 등을 들으면서 절약수단이 어렵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한인들은 본 받았으면 한다.
2,400여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공자는 고부(姑婦)간의 갈등은 ‘영원한 앙숙’이라 했다. 절약과 소비 관계도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앙숙 관계이다. 이러한 앙숙관계 해소를 위하여도 기울지 않는 중간 접점을 찾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경제 주체인 국가나 개인이 이 접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이엑 교수의 주장대로 미래를 위해서는 절약 이외에 다른 처방이 없음이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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