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목회학박사)
사람이 산다는 게 뭐 별건가. 아침에 일어나 찬물 한 컵 마시고 숨 한 번 들이쉬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게 사람의 살아가는 하루의 시작인데. 거기에다 무슨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 집을 나오면 부대끼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사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피곤한 하루를 지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면 또 하루가 가고.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하는 인생들. 매일과 일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오늘도 무사히. 어느 한국 택시운전수의 하루 일과의 표어처럼 그저 하루만 잘 보내면 된다는 식의 매너리즘에서 허우적대며 벗어나지 못하는 일군들. 그러다 자식들은 커서 시집 장가가고 또 손자 낳고 그 손자 뒤치다꺼리하다 가는 게 사람 아니던가. 인생 아니던가.
사람의 생이 날숨과 들숨에 달려 있어 숨만 막히면 한 세상 이별인데. 기고만장. 천년만년 살 것처럼 눈을 부라리며 호령하는 권력께나 있고 돈께나 있는 사람들. 목은 뻣뻣하여 금방 뇌졸중이라도 걸릴 것 같으나 용케 살아남아 더 목은 뻣뻣해지고. 자기 위에는 사람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다 죽음을 향해가는 순례자들임을 모른다.
태양이 눈부시다. 모든 게 다 태양을 의존해서 살아가는 지구촌의 생명과 그들의 운명들. 오늘 하루 태양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니 오늘 하루 지구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지구 안 생명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말이 하루지 그건 자연의 역순. 자연이 거슬러 돌아갈 때 허약한 사람의 생명들은 그 역순에 끼어 허우적거리게 될게 뻔하고. 아우성이 천지에 달할 것. 사람이 산과 들 물과 강 무서운 줄 모른다. 어느 하늘까지 사람의 성을 쌓아 올라 갈 것인가. 올라가도 올라가도, 올라갈 수 없는 그 무한의 세계를. 사람은 그저 멋대로 몇 차원을 오르려 한다. 건너뛰려 한다. 욕심이 욕심을 낳고 또 욕심이 분을 낳고 분은 또 욕심을 낳고, 낳고, 낳고. 사람의 참 모습. 흙으로부터 태어난 그 참 모습은 사라지고. 금상이 되려한다.
창살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가슴에 고이 담아두는 한 사형수. 순간순간을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그 사형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창살 틈으로 들어오는 그 한 줄기 햇빛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 줄 모른다. 세상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들. 순간순간 애타게 지나가는 분초들. 오늘, 내일. 어쩌면 모래. 세상 사람이 아니 되고 혼이 되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그 사형수. 사람이 산다는 게 이 사형수에겐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뭐 별거란 게 아니다. 아주 특별한 거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무지무지하게 특별한 거다.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게 사람의 목숨이자 생이라 하지만. 허무하게 사라질 수는 없다는 게 그 사형수의 마음. 이처럼 분초가 아까워 속이 타들어가 머릿속이 하얗게 바스러지는 사람도 있음에야 어쩌랴.
한 생명을 낳기 위해 조산 실에 들어간 산부. 여인들. 여성들. 어머니들. 생명을 낳아 그 생명을 통해 사람을 사람으로 이어져가게, 세상을 엮이어가게 하는 주인공들. 내 자식이 곰보 째보라 하여도 그 어느 자식보다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태초의 어머니 마음. 열 달 만에 태어나 ‘으앙’하고 세상 나왔다 신고하는 핏덩이 아기를 보며 그렇게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성애. 세상 살맛, 남에야. 누가 사람이 산다는 게 뭐 별거라 하였나. 산다는 건 별거중의 별거. 아프리카에 태어나든 미국에 태어나든 한국에 태어나든. 태어난 한 사람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 하나 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 한 사람의 귀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귀한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을 한다면 그 보다 더 아름다움과 살맛나는 일은 없다.
지지고 볶아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만 한다면. 그 사랑으로 그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사랑으로 보일 텐데. 날숨과 들숨이 들먹이며 춤을 추고. 찬 물 한 컵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출렁이는 신비의 세계를 보고.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향해 소망과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 하루하루가 천국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죽는다면 그 사람 천국은 영원이다.
고통 가운데 즐거움이. 고통 속에 고통을 넘어가는 환희가 있음에야. 태양 볕이 뜨거운 6월의 낮과 밤. 밤과 낮. 세상은 고(苦)가 아닌 낙(樂)으로 변한다. 고 속에 낙이 있음에야. 낙속에 또 고가 함께 있음에야. 분분초초 감을 아까워 어쩔 줄 모르는 사형수의 마음을 그 누가 읽으랴.
부대끼는 사람들 속에 행복감이 오고감을. 이 눈치 저 눈치 봄에 사람의 정은 싹트고 그 눈치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피곤함 속에 나른한 즐거움이 함께 한다. 매일과 일상 사이에 오늘도 무사히 지남은 감사의 마음임을. 숨 한 번 들이쉬어 시작되는 또 하루는 새로운 기적을 잉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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