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돌아가는 대선 상황은 ‘절박’한데 자신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함을 고백한다. “평화 개혁세력의 대통합에 작은 밀알이 되겠다”고 ‘대선 열차’에서 뛰어내린다. 정치지도자로서 돋보이는 대목이다. 김근태가 “버림과 물러남”의 자리에서 밝히는 결의는 단호하다. ”2007년 대선이 대한민국의 10년 미래를 가르는 분수령이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것이다. 민족사적 소명일 수 뿐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성패가 걸린 10년이라는 말일 것이다. 특히 한국민들은 ”…새로운 위기, 역사적 반동에 직면”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부패하고 냉전적이고 부자 중심의 정책을 주장”하므로 그런 “경제철학을 가진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줘선 안된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그 뜻이 분명하여 정치지도자 김근태의 무게와 깊이와 범 여권에 호소하는 “대통합”의 진정성까지 읽을 수 있게 한다.
그가 밝힌 결의와 휘두르는 깃발이 지키는 자리는 반 한나라당 전선의 중심축일 수 있다. 범 여권 대권주자들의 놀이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태의 추이가 어찌되던 ”작은 기득권이지만 버리는 것이 대통합신당을 추진하는 많은 정치인의 외로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 담긴 뜻은 살아 숨쉴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얼마쯤은 굼뜨고 어눌했던 ‘정치지도자 김근태’의 참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가 ‘새 정치의 역사’와 함께 정권 재창출의 길을 여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판 밖에 서 있는 우리들이지만….
국민들도, 언론도, 그동안 경쟁의 길을 걸었던 이웃들도 힘을 더해준다. 범 여권 대선예비주자들은 하나같이 “김근태의 뜻에 따라 국민경선에 참여할 것”을 밝힌다.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전 의장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들은 특별히 눈길을 끈다. 6월13일 저녁, 서울대학교 동문인 손학규(65학번), 이해찬(72학번), 정동영(72학번) 전 당의장이 자리를 함께 한다. 최열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 대표의 “70년대 캠퍼스” 출판 기념회 자리이다. 이날 행사에서 손 전 지사와 이 전 총리는 정 전 의장이 축사하는 내내 손을 붙잡고 있었고, 정 전 의장이 자리로 돌아오자 세 사람이 함께 손을 마주잡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특별히 정동영 전 의장은 축사에서 “이해찬, 손학규, 정동영 세 사람만 통합해도 대통합의 절반은 잘 될 것 같다”면서 특히 김 전 의장의 불출마선언을 거론, ”김근태 정신이면 대통합을 못할 일이 없다. 그 정신에 동참하면서 이 귀한 자리가 대통합으로 가는 밑거름, 에너지가 되길 바란다”며 “죽을 각오로 대통합에 참여하겠다”고 뜻을 분명히 했다.
오래 전부터 범 여권의 대통합을 주장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 전 의장의 불출마선언에 대하여 “살신성인적인 일을 했다. 대통령 후보로 나가지 않더라도 국민이 정치인 김근태에 대해 성원을 보낼 것”이라고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범 여권 대통합의 축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닐까.
손, 정 예비후보를 내치는 노심(盧心)이 문제이지만, 범 여권의 대통합과 ‘여야 1대1 진검 승부’가 아니고서는 길이 없음을 2002년 체험으로 익힌 솜씨다. 결코 반 한나라 세력이나 범 여권 세력끼리의 대립과 갈등과 분열로 정권 재창출의 기회를 잃는 우(愚)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범 여권 평화 개혁세력과 반 한나라당 정서까지 아우를 수 있는 소위 “국민후보”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의 자격 요건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몸 바친 사람, 민족의 화해 협력에 대해 확실한 신념이 있는 사람, 중산층과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한반도의 앞날을 두고 살핀다면 백번 옳은 말이다.
남북 화해, 협력이 지켜주는 평화가 깨진다면 어느 세월에 서울만의 번영을 꿈꿀 수 있으며, 경제적 번영 없이 무슨 힘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앞당길 것인가. 또 입 큰 정치인이라면 너도나도 “선진 한국”을 말하는데, 정말 남북통일 없이도 ‘선진 한국’이 가능한 것인가.
서울의 정치판이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경선 열기가 비등점으로 치닫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기세 때문인가? 범 여권의 ‘대통합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김근태 전 의장이 지핀 불씨 탓인가. 이해찬 전 총리와 정동영 전 의장이 “대권 대장정”에 몸을 던지며 내뿜는 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노대통령의 말을 두고 “나는 대한민국의 손학규일 뿐이다”고 밝히는 손학규 후보의 당당한 저 기세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북악(北嶽)이냐, 관악(冠岳)이냐?
판 밖의 눈에 비친 서울 소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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