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고은 선생이 한 강연에서 최근 대선정국에 대해 “지금은 자기 언어만이 진리고 정의다. 자신의 입만 알지 귀의 소중함을 잊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후보 검증을 둘러싼 진흙탕싸움으로 블랙홀 속에 빠져들고 있는 야당과 남의 집안싸움에 기름 부어대고 있는 여당 모두를 겨냥한 쓴소리이다.
소위 검증정국에 들어서면서 난무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카더라’식의 의혹 제기와 “사실 무근이며 이미 옛날에 끝난 얘기”라는 무책임한 ‘묻지마 해명’들 뿐이다. 특히 야당 두 후보간의 검증공방을 지켜보노라면 ‘불안한 동거’가 아니라 ‘기괴한 동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싸우는 양상을 보면 한집안 식구 같지가 않다. ‘검증’이라는 점잖은 단어가 무색하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거액의 재산상속에 문제가 생길까 봐 부부 파경을 집안 어른들에게 숨기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한나라당이 꼭 그 모습이다. 대권 때문에 ‘화해 불가능한 불화’를 감추고 있는 듯한.
‘카더라’ 정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세계 곳곳에 지사망을 가졌으며 인류사에 등장했던 언론들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언비어 전문 ‘UB통신’ 편집인과 특별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바쁘겠다.
▲대한민국 대선 때문에 정신없다. 워낙 기사 수요가 많아 송고하느라 기자들이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다. 각국의 대선은 통상적으로 UB통신의 가장 큰 대목이다.
-기사의 밸류는 어떻게 결정하나.
▲UB통신은 아주 과학적인 방법으로 뉴스의 가치를 결정한다. 우리가 쓰는 공식은 R=I×A이다. 물론 R은 ‘Rumor’, 즉 ‘카더라’이고 I는 ‘Importance’로 ‘중요성’이다. 그리고 A는 ‘모호성’을 뜻하는 ‘Ambiguity’이다. 즉 사안이 중요하면서 모호성이 클 때 가장 밸류가 큰 뉴스가 되는 것이다. 대권이라는 중요사안에 근거가 모호한 ‘카더라’. 이보다 더 관심을 끄는 뉴스가 어디 있겠는가.
-이른바 ‘카더라’ 통신의 수요와 열독률이 식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는가.
▲아무래도 뉴스 하나하나의 효용성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거가 약해도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는가’라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가짜 약을 투약해도 이를 진짜로 알고 먹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가. 소위 플라시보 효과이다. 마찬가지로 진짜가 아닌 사실도 반복해 주입하다 보면 어느 정도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들끼리는 이것을 전문용어로 ‘카더라의 플라시보’라 부른다. 거기다가 ‘카더라’ 중 몇 개가 사실로 판명되면 다른 ‘카더라’의 밸류도 동반 상승한다.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걸 봐라.
-‘UB통신’에도 사시가 있는가.
▲사시라고 하긴 뭐하고 마케팅 포인트는 있다. UB통신 가입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카더라로 집중 공격하면 상대가 완전히 가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입자들의 이런 사용 경험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마케팅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이 질문에 편집인은 멈칫했다. 자칫 자신의 대답이 회사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UB통신의 ‘오프 더 레코드’는 ‘온 더 레코드’를 뜻하기 때문에 여기에 옮긴다)
▲이거 잘못 말하면 회사가 힘들어 지는데…. 소통이 원활한 조직이나 국가들에서는 마케팅에 애로가 많다. 대선만 해도 그렇다. 후보들의 자질 검증을 정통언론들이 나서서 하는 나라들에서는 UB통신이 맥을 못 춘다. 미국의 경우 후보 검증을 언론들이 탐사보도식으로 나서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언론을 ‘위대한 언급자’(Great Mentioner)라고 하지 않는가. 미국 대선은 덩치만 컸지 실속이 없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카더라’ 한번 불어대면 언론들이 사실 확인도 없이 경마중계식으로 보도하기 바쁘다. 이보다 더 좋은 마켓은 없다.
-그렇다면 시장성 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뉴스밸류 산정과 비슷한 공식을 쓴다. M=I×A÷C가 그것이다. I와 A는 앞서 설명했고 M은 ‘Marketability’, 즉 시장성, C는 ‘Communication’으로 상호 소통 또는 언론의 역할을 뜻한다. 한마디로 잘 뚫려 있는 곳은 우리가 발붙이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UB통신 편집인은 “사실 우리 통신이 발붙이지 못하는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시공에 따라 부침은 있을지 몰라도 통신이 문을 닫는 일은 인간이 말을 할 수 있는 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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