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hard, or never die?” 영화제목이 아니다. 요즘 일부에서 꽤나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질문이다.
‘냉전은 사망신고를 마쳤다’-. 1991년 서방 언론들이 일제히 내건 헤드라인이었다. 핵 공포 속에 근 반세기를 끌어왔다. 그 지긋지긋한 냉전이 서방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선언이다. 그 믿음은 그러나 오늘날 흔들리고 있다.
미국을 나치 히틀러 제국 같은 존재로 몰아붙인다. 미국의 독주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한다. 누가. 러시아의 푸틴이다. 사사건건 미국의 반대편에 서있다.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또 우주공간에서까지. 누가. 중국이다.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면을 했던 것이다. 러시아가, 또 중국이 수퍼파워 미국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급격히 재부상하자 나오는 말이다.
중국과 러시아뿐이 아니다. 이란이 있다. 시리아가 있고, 베네수엘라도 있다. 그 라인업 형세가 과거 냉전시절을 방불케 한다. 군사적 대칭관계로 보아도 그렇다. 정치 프로퍼갠더 역시 냉전시대의 수사를 빼닮았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 아니 틀렸다. ‘사회주의가 아니면 죽음을’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내건 구호다. 그리고는 거침없는 반(反)미다. 부시는 악마다. 미국은 악의 화신이고. 이 세상의 부조리란 부조리는 죄다 서방 제국주의자들 때문이다….
‘쓸모 있는 바보들’(useful idiots)도 제철이다. 여기저기서 황당한 논리들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세계화는 라틴 아메리카를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다. 카스트로 체제의 쿠바는 정치범이 없는 이상적 체제로, 일부 정치범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일 뿐이다 등등.”
그 이론에 도취해서인가. 차베스가 가톨릭교회, 다시 말해 언론에 재갈을 물려 거의 유일한 정부비판 세력인 그 가톨릭교회 사제들을 소집해 놓고 한 말씀 했다고 한다. 시대도 시대인 만큼 주교와 신부들도 마땅히 마르크스와 레닌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세계는 새로운 냉전시대에 돌입한 것인가. 일부의 전망은 ‘그렇다’ 쪽이다. 그 보다는 ‘정치적 광신주의가 유행을 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진단이다.
정치 수사들이 여간 거친 게 아니다. 포퓰리즘 정도가 아니다. 선동적이다. 과거를 파헤친다. 그 과거사 바로잡기가 현재를 압살시킨다. 폴란드의 상황이다. 과거 나치 부역자를 색출한다. 공산 정권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가려낸다. 그러다 보니 남아나는 게 없다.
폴란드가 자랑하는 가톨릭교회마저 휘청거린다. 포퓰리즘과 선동정치가 극성을 떠는 폴란드는 오히려 광신적인 볼셰비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난무한다. 선동정치가 휩쓴다. 그 가운데 시장과 법치주의가 무시된다. 이는 어찌 보면 세계적 현상이다. 구 동구권 일부국가에서, 중동지역, 라틴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그러면 왜 그토록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을까. “세계화, 시장 등의 단어가 그 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로저 코언의 지적이다.
세계화와 시장경제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의 영역이 점차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와 정체성(identity)밖에는 달리 자원이 없다고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더더욱 매달리는 게 ‘정체성의 정치’다. 문제는 극히 조잡한 형태의 정체성 정치가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을 무시하는, 그래서 모든 게 임의적인 선동정치 말이다.
다시 말해 파워는 눈에 보이는 정치인에서 점차 보이지 않는 권력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시장(market)이라는 권력이다. 파워를 놓치지 않으려고 정치인들은 발버둥이다. 그 결과 언어가 과격해진다. 파워 상실의 속도와 반비례해 말도 더 거칠어진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하루도 그칠 새 없이 독설을 퍼붓고 있다’-. 이 한국적 현상도 그리고 보니 역시 세계적 흐름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화가 난 것이다. 그리고 두려운 것이다. 파워가 빠져나가서다. 열린 우리당이 공중 분해된다. ‘세계적 대통령인 나를 도대체 어떻게 알고….’ 괘씸한 마음이다. 그래서 화가 난다.
또 두렵다. ‘파워를 놓는 날에는…’ 생각조차 끔찍하다. 그 두려움은 공명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DJ를 포함한 여권 전체로. 그 초조감 속에 연일 쏟아지는 게 밑도 끝도 없는 폭로에, 독한 말들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스스로 ‘세계적 대통령’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포퓰리즘이, 선동정치가 무엇인지, 그 세계적 현상을 알게 해준 장본인이란 점에서.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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