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편집국장
◈”당신, 기자 맞아?” 참 도발적인 이 말은 90년대 후반 한국의 어느 퇴직기자가 쓴 책 이름이다. 그가 지어낸 말은 아니다. 그가 현역기자 시절 택시에서 들은 핀잔을 옮겨쓴 것이라고 한다. 핀잔의 취지는 책 내용에서 고스란히 배어난다. 자칭타칭 기자들이 응당 해야할 일에는 한심할 정도로 방일하면서 하지 말아야 될 일에는 경이로울 정도로 근면한 실태를 사례를 들어 고발하고 있다. 그 내용이야 어쨌든, 기자는 가끔 자기점검을 위해 이 질문을 떠올리곤 한다. 원치는 않지만 별수없이 듣게 되는 때도 있다. 대개 비판기사를 썼을 때다. 그때마다 감정적이다, 누구누구 죽이기다 하는 볼멘소리가 공통후렴처럼 따라붙는다.
◈”당신, 기자 맞아?” 재작년 가을 IIC사태(몇몇 이사들이 정관을 무시하고 IIC를 IU로 개명하는 등 독자노선을 걷다 IIC유지파에 의해 소송을 당한 사건) 때 기자는 IU파를 연쇄 비판했다가 이보다 더한 소리를 들었다. 소리만 아니다. 반박성명서에다 공개질의서에다 대여섯장이 넘는 문건에는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라”는 엄포까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IU파에 가담했던 어느 교수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기사를 쓰느냐는 항의성 전자우편을 보내오기도 했다.
결과는? 법원이 내렸다. IU파의 행위를 불법으로 판결했다. IU파는 전원 추방됐다. IU파가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더라면, IIC파와 손잡고 지금쯤 보다 나은 학교 가꾸기를 하고 있을텐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당신, 기자 맞아?” 지난해 봄 SF상의가 기자에게 취한 조치에 비하면 이 말은 약과다. 상의의 한인회 무시처사를 비판한 김에 상의 주최 동포한마당잔치의 탄생배경을 짚어가며 이를 다른 단체 유사행사와 통폐합하는 대신 상의 성격에 어울리는 무역박람회에 치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등 비판기사를 내보냈더니 SF상의는 이사회를 열어 두 행사에 대한 결연한 사수의지를 확인하면서 기자에 대한 출입금지를 의결했다. 공개질의서도 보내왔다(당시 신문에 공개답변함). 감정적 기사라는 품평도 잊지 않았다.
결과는? 바로 다음해, 그러니까 올해, SF상의는 두 행사 다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설명도 없다. SF상의가 좀더 냉정하게 앞날을 헤아렸더라면, 어렵사리 싹틔운 무역박람회를 잘 키울 수 있었을텐데, 작년 그 사태 이후 중국 어느 도시 홍보대사 통상대사 등 3명이 배출되는 등 SF상의 라인업이 한껏 화려해졌으므로 그것 없이도 해낸 무역박람회를 훨씬 멋지게 개최할 수 있었을텐데, 최소한 그 단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가물가물하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당신, 기자 맞아?” 체전사태 와중에 들은 것에 비하면 이 물음도, IU파가 한 엄포도, SF상의가 취한 조치도 자장가쯤 되지 않을까. 누구누구 이름을 댈 것도 없이 ‘그 사람들’에 따르면, 기자는 숫제 기자 이전에 인간도 아니다. 기자가 쓴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유언비어다. 뿐인가. ‘그 사람들’ 말이 사실이라면, 기자는 “정부 아파트에 불법으로 살면서” “(모모씨와 불편한 사이인) 000한테 돈을 받아먹고” “(모모씨에게 애들 장난감도 아니고 수만달러가 드는) 태권도장을 내달라고 요구했다가 들어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악성기사를 써왔으며, 따라서 “체전이 잘못 되면 정00 기자 한사람 때문”이다. 체전사태와 관련해 지난달 발표된 기자협회 전현직 회장단 명의의 성명서를 읽어보니 거기서도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당신, 기자 맞아?” 사방이 다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 같은 사람들’뿐이라면, 그들 말대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데 기자가 공연히 유언비어 기사를 쓰는 바람에 잘되던 것이 망가졌다면, 기자는 비양심기자 사이비기자임을 이실직고하고 쥐구멍에라도 찾아들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긴, 기자가 숨기 이전에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 그 좋다는 법 놔두고 유언비어나 퍼뜨리면서 그렇게 비효율적이고 점잖게 대응하겠는가.
체전은 현재진행형 사안이므로 최종판단은 유보하자. 다만, 비판기사를 대할 때 기분이 좋고나쁨에 휘둘리지 말고 일리 있으면 고치고 터무니 없으면 그것대로 당당하게 대응하라는 상식을 들려주고 싶다. 공연히 체전준비가 부실하다는 지적(눈을 씻고 다시 보라, 재작년 초 체전유치 준비단계부터 기자가 쓴 관련기사 어느 구석에도 체전 자체를 반대하는 문구는 없다)에 체전방해 음모라고 대응하면 체전준비가 저절로 잘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학생에게 시험준비 잘하라고 지적했더니 꾸역꾸역 말을 듣지 않고 입맛에 맞는 패거리들 하고만 어울리다가 기어이 시험을 망쳐놓고는(혹은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지경이 되고서는), 진작에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은 걸 반성하기는커녕 당신 때문에 시험 망치게 됐다고 원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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