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약관 20세의 타이거 우즈가 거액의 나이키 계약을 거머쥐고 프로로 전향했을 때 이를 바라보는 선배들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그 시선에는 질시와 분노가 섞여 있었다. 아무리 천재성을 지녔다지만 아직 프로에서 실력을 입증 못한 애송이 아닌가.
그러나 타이거는 프로로 전향하자마자 곧바로 선배들의 입을 쫙 벌어지게 하더니 이어 비판의 입을 꽉 다물게 만들어버렸다. 그해 다섯번째로 출전한 대회에서 프로 첫 우승을 한 타이거는 이어 매스터스에서 12타 차이로 그린재킷을 차지해 골프계를 경악케 했다. 당시 이 대회를 중계한 CBS의 시청률은 14.1. 케이블 등장 이후 골프중계 시청률로는 사상 최고였다.
PGA는 수퍼스타의 출현을 곧바로 중계권 재협상으로 연결시켰으며 중계료는 40%나 뛰어 올랐다. 그러니 선배들 입장에서는 처음엔 못마땅했던 타이거가 귀여워 보일 수밖에. 곡간에서 인심 난다고 주머니 두둑해 지면 사람 마음은 한결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타이거 등장 이후 10년간 PGA의 상금은 무려 3배나 늘어났다. 시즌 총상금 100만달러를 획득한 첫 선수가 등장한 것이 1980년대 중반인데 지난해에는 100만달러 이상 상금 선수가 무려 90명을 넘었다. 이처럼 스포츠는 수퍼스타 파워를 먹으며 성장한다.
‘천재소녀’ ‘골프신동’ 소리를 듣던 미셸 위가 프로로 전향했을 때 ‘언니 골퍼’들이 바랐던 것도 이런 수퍼스타 파워였다. 미셸이 돌풍만 일으켜 준다면 PGA에 비해 보잘것없는 LPGA가 힘차게 비상하고 자신들의 주머니도 두둑해 질 것이라는 기대였다. 고등학교 다니는 어린 소녀가 연 1,500만달러 스폰서 수입을 올리며 등장하는 것을 바라보며 얼마나 속들이 쓰렸을까. 하지만 그런 기대감으로나마 속 쓰림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미셸은‘복덩이’노릇을 전혀 못하고 있다.
올 6월 초는 17년밖에 되지 않는 미셸의 짧은 삶에서 가장 긴 열흘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지 않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더니, 긴 트리뷰트 대회에서의 부상 기권과 이를 둘러싼 의혹, 프로앰 경기 매너 논란,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의 부진, 선배들의 가차 없는 질책 등등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져 이미지가 말이 아니게 됐다. 정말 미셸이 부상으로 기권한 것인지 아니면 88타 규정을 피하려 둘러댄 변명인지는 당사자와 부모 외엔 모를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 어린 소녀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부상을 둘러싼 진실이 아니다. 그렇게 설명해도 동료들과 언론이 선뜻 믿으려 들지 않는 분위기가 문제인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미셸과 그의 부모, 그리고 에이전트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차세대 LPGA의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할, 그리고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프로로 전향한 미셸이 아직 LPGA 멤버가 아니라는 사실은 의외다. 멤버가 되면 지켜야 할 의무 출전 규정 등을 피하고 프리랜서로 영양가 있게 활동하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한 식구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한 골프 칼럼니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손으로는 LPGA를 밀어 내면서 다른 손으로는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성공신화를 쓰고있는 이승엽은 미셸에게 가르침이 될 만한 스포츠 스타이다. 이승엽은 타고난 실력을 지녔다. 또 성실한 연습벌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그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이승엽이 지닌 스타성의 ‘화룡점정’은 동료들에게 겸손하게 다가서는 그의 인간성이다. 그래서 팀 동료들은 이승엽에 대해 서슴없이 “승짱은 실력도 짱, 매너도 짱”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런데 미셸은 지금 ‘짱’이 아니라 “실력도 꽝, 매너도 꽝”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 이런 미셸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이 소녀에게 시급한 것은 PGA 컷 통과나 LPGA 우승이 아니다. 성적이 안 나온다고 너무 조급해 할 이유가 없다. 천재적이란 평을 받던 그 스윙은 어디 가지 않는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선배 동료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서는 일이다. 한배에 탄 식구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하루 빨리 LPGA 멤버가 돼야 한다. 집안에 새로 들어온 어리고 돈 많고 예쁜 동서가 손윗동서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화목은 힘들어 진다. 온가족 모임이 있을 때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거지에 나서는 싹싹함을 보여야 미운털이 박히지 않는다.
‘왕언니’ 소렌스탐이 쓴 소리 좀 했다고 발끈하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견디기 힘든 비판 속에도 거의 언제나 약간의 금싸라기는 섞여 있는 법”이라고 했다. 억울하다고 변명과 반박에만 급급해 한다면 결코 비판자들을 우군으로 돌려놓지 못한다.
지금의 호된 몸살은 어린 천재가 한번은 겪어야 할 ‘성장통’이다. 이 성장통을 잘 이겨낸다면 한 인간으로서, 또 골퍼로서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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