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시즌을 맞아 올해도 즐거운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각 학교 수석 졸업생들 중 한인학생들이 여럿 끼어있다. 자녀를 그 나이 넘게 키워본 부모라면 그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지를 안다. 축하해주고 칭찬해주고 싶은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가슴 짠해서 다시 보게 되는 졸업식도 있다. 대안학교 그린패스쳐의 졸업식이 그렇다. 이 학교는 청소년기 심한 방황으로 일반학교에서 ‘퇴출’당한 학생들을 위한 학교. 수백명 졸업생이 왁자한 일반 졸업식과 달리 20여명이 교회당을 빌려서 하는 조촐한 졸업식이지만 이들 20여 졸업장에 걸린 의미는 수백명 졸업장에 버금간다.
졸업은 우리 생애의 이정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의무교육의 대 장정을 끝마치는 의식, 대학교 졸업식은 독립된 개체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의식이다. 그 과정에서 열일여덟, 혹은 스물한둘의 나이에 일종의 ‘등급 평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또 졸업이다. 요즘 모임에 가면 단골로 떠오르는 화제이다.
“그 집 아들은 동부 명문 두 군데나 합격이 되었어요”“그 아이는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요. 합격한 대학이 별로예요”“워낙 공부를 안 해서 커뮤니티 칼리지 간다는 군요. 그 부모는 속께나 상하겠어요”“그 집 딸은 4학년 1학기 때 일찌감치 일류기업에 취직해서 지금 느긋해요”“아이가 취직을 못해서 졸업하자마자 짐 싸들고 집으로 들어왔다는 군요. 그 엄마는 속에서 불이 난데요”…
진학하는 학교, 취직한 회사나 연봉에 따라 졸업생들은 일등급으로, 꼴찌로 ‘등급’이 매겨지고, 그 부모들 역시 자식농사의 성적표를 받은 듯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잔뜩 풀이 죽기도하며 졸업시즌을 지나고 있다.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바닥을 기는 ‘꼴찌’라고 항상 ‘꼴찌’로 머물라는 법은 없고, ‘일등’이 평생 ‘일등’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카피 샵 체인인 킹코스 창업자 폴 오르팔라는 ‘꼴찌’중의 ‘꼴찌’였다. 훗날 난독증에 학습 장애로 밝혀진 그는 너무 공부를 못해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낙제를 거듭했다. 어찌어찌해서 USC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학업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공부하는 친구들 옆에서 커피 타다 주고 피자 주문하며 시중들다가 페이퍼가 완성되면 카피 샵으로 달려가서 복사해 제출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러던 중 카피 샵이 너무 붐벼서 제때 복사를 할 수 없던 데 착안해서 시작한 것이 킹코스였다.
성적이 바닥인 그는 자신이 회사에 취직할 가능성은 제로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다. 1970년 22살 때 그는 아버지의 보증으로 5,000달러를 대부받아 UC 샌타바바라 근처에 복사기 한 대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제록스 복사기 월 대여비는 1,000달러, 복사 비용은 장당 4센트. “데스밸리에서 모피 장사하는 게 낫겠다”고 그의 아버지는 기막혀했다.
하지만 킹코스는 2004년 페덱스가 매입할 당시 연 매출 20억달러, 총 1,200개 매장의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기계치인 그는 자사의 어떤 기계도 작동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의 사업 모토는 간단했다. “누가 하든 나 보다는 낫다” 였다.
자신이 얼쩡거리면 될 일도 안 된다며 직원들에게 다 맡기고 자신은 가능한 한 사라져 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사장이 직원에게 모든 걸 맡기고 직원 대우를 잘 해주니 회사는 저절로 굴러 가더라는 것이었다. ‘꼴찌’라서 가능한 열린 경영법이다.
우리의 스물 즈음을 생각해보자. 그 시절 앞서 가는 것 같아 부러운 친구들도 있고 한참 뒤처져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고속 승진하던 친구가 40대 들어 갑자기 모든 게 시들하다며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도 있고, 느릿느릿 뒤처진 것 같던 친구가 마침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 잘나가는 경우도 있다.
부모로서 우리가 넘어서야 할 것은 매사를 ‘일등’부터 ‘꼴찌’ 로 등급 매기는 고정관념이다. 그런 수직적 고정관념이 ‘가짜 학생’을 만들고, 커닝 유혹을 만든다. 명문 대학이든, 2년제 대학이든 자녀가 자기 속도로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하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졸업시즌에 모든 졸업생들에게, 특히 ‘꼴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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