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영(전 언론인)
지난 2월 13일 타결된 북한 핵문제 해법이 그 실현 단계에서 첫 관문인 B.D.A. 문턱에 걸려 4개월째 표류하고 있다.방코 델 아시아 은행 계좌에 묶여있는 북한 돈 2,500만달러가 당초 약속대로 자기들 손에 들어와야 1차적 행동 의무인 핵원자로 봉인과 국제 원자력위 사찰단 초청을 이행하겠다는 북한측의 완강한 고집. 이 때문에 타결의 행보는 이 날 현재 정지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온세계의 관심 속에 지루하게 이어지던 6자회담이 드디어 타결되자 남북한과 세계는 50년 이상 지속되던 한반도의 긴장이 가시고 세계에 남은 마지막 분단, 대결의 땅에 평화와 화해, 통일의 전망이 열리게 되었다고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사람들은 처음 부시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내려진 이상 B.D.A.문제는 지엽 말단의 실무적 사안으로 여겨왔었다. 그러나 이것이 뜻밖에도 큰 걸림돌이 되어 이날까지 난항함으로써 어렵사
리 해법을 찾은 북핵 위기가 자칫 원점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금년 2월 미국의 힐 차관보와 북한의 김 부상은 베이징 회동에 앞서 베를린에서 열린 비밀회담에서 미국은 B.D.A.에 묶여있던 북한 돈 2,500만 달러를 모두 풀어주기로 약속했었다. 이라크의 수렁에 발목이 잡혀 허덕이던 미국은 이미 핵실험을 끝낸 북한의 핵 확산만이라도 막아 급한 불을 꺼야겠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네오콘식 강경 원칙에서 한 발짝 물러나 북한측과 중국측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2.13 타결을 이루었다.
미국 재무부는 실무진을 마카오에 보내 동결자금을 푸는 기술적 실무적 작업을 서둘렀고 마침내 돈을 찾아가라고 북한측에 통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은 현금으로 찾아가라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현찰이 아니라 앞으로 국제간 금융거래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금융제재의 빗장을 풀어달라는 것이다.9.11 이후 제정된 애국법 311조는 불법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은 미국 정부가 언제든지 동결할 수 있고 그 돈을 취급해 준 외국은행과는 거래를 끊도록 미국 금융기관들에 못을 박아놓고 있다.
사실상 세계 금융 질서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이 막강한 힘은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하기를 원하고 있는 북한과 같은 가난한 나라들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체제 안보를 확보한 다음 세계 경제질서에의 편입을 갈망하고 있다. 무역도 해야 하고, 외화도 획득해야 하며, 그러려면 미국 지배 하의 국제금융질서에 들어와야 한다. 자립적 민족경제만 외치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 바 있다.
소련, 동구 등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로 코메콘 체제에 의존해 오던 북한은 이제 자본주의 세계 경제 질서에로의 편입을 오래 전부터 시도해 온 것은 사실이나 미국 등의 견제에 막혀 지금껏 실현을 못 해 왔었다.
수출도 하고, 수입도 해야 하는데 그 때마다 현금으로 결제할 수도 없는 일, 북한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이고 애국법 311조를 발동하여 북한 자금을 동결할 수 있고 외국은행들도 미국 눈치 보느라 북한 자금을 상대하지 않게 될 것을 겁내고 있는 것이다. 테러자금, 마약, 위폐 자금일 수도 있다는 등 명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국가 단위로 볼 때 푼돈에 불과한 2,500만달러. 북한이 여기에 명운을 걸고 있는 듯한 이유인 즉, 그들은 이 B.D.A.문제를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그만두고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시험해 보는 시금석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부시는 당초 네오콘 강경파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국무부의 라이스, 힐 등 협상파들의 주장에 따라 2.13 타결이란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 전비(戰費)법안에서 미군철수 시한을 못박은 민주당 측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 무제한 주둔의 가능성을 확보한 다음부터 재무부에 진을 치고 있는 강경파(스튜어트 레비 차관 등)들의 주장에 솔깃하고 있는 것 같다.네오콘들은 “북한은 조금만 더 조이면 붕괴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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