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버지니아 텍 캠퍼스에서 발생했던 총기난사 사건의 충격은 아직도 우리들 사이에서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서부의 한 명문 대학에서 한인 여학생이 가짜 학생행세를 하다 들통 난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은 겉으로 전혀 무관하게 보이지만 한국인들 특유의 교육관과 철학적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
교육 지상주의, 절대주의로 표현되는 한국의 교육문제는 원천적으로 문화적, 철학적인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이 교육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자책과 냉소의 대상이 되어 온 수많은 얘깃거리로부터 읽을 수 있다.
뱃속의 아이가 공부도 잘 하고 영어도 잘 하도록 고전음악이나 원어민의 회화녹음을 들려주는 태교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이가 영어를 잘 하게 혀 수술을 해준다는 얘기도 있고, 두세 살부터는 각종 과외와 학원을 시작하고 그러다가 어린 나이에 해외 조기유학을 보내고, 급기야 대입 수능시험을 잘 못 봤다고 학생들을 자살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교육은 문화이자 전통이자, 철학이자, 종교, 아니 그 이상이다.
관존민비와 사농공상의 계층의식이 지배해 온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개인의 출세와 영달에 이르는 유일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교육만은”이라는 높은 사회적 교육열이 유지되어 왔다. 여기서 교육에 관한 열기는 높을수록 좋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무엇이든 도가 지나치면 나쁘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한국의 졸업장 만능주의는 권위와 명분을 앞세우며 체면과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유교적 형식주의에 뿌리를 둔 것으로 한국사회가 실속과 실력을 외면한 채 외화내빈을 양산하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좋은 성적 = 좋은 학생’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심어지게 된다. 자녀 교육의 성패는 명문 학교 입학여부에 따라 결정되며 자녀의 진학은 곧 부모의 자랑이 되고 자녀의 입시실패는 부모를 죄인으로 만든다.
지나친 교육열은 형식적, 맹목적 교육 절대주의를 낳고 결국 교육병으로 이어진다. 한국사회가 과소비, 명품선호, 과시욕, 일류병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풍조에 시달려 온 이유도 이런 형식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의 측면에서도 교육 과소비, 교육명품 선호, 교육 과시욕, 교육 일류병 등으로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엄청난 교육수요로 각종 학원, 인터넷 대학, 방송대학, 외국대학, 특수 대학원, 고시원 등이 졸업장과 자격증을 남발하고 있고, 청년실업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제 거의 모든 직종이 대졸자들, 해외유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러한 위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처럼 해외유학 의존도가 높은 예를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버지니아 텍 총기사고나 가짜학생 사건과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을 이민 1세인 우리 역시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나 미주의 우리나 이러한 교육병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를 계몽하고 교육하는 의지와 노력을 펼칠 것을 주장한다.
개인의 능력을 가늠하고 나아가 사회전체의 기능과 효율을 제고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학위나 졸업장과 같은 형식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력, 즉 내용이라는 것을 각 개인이 그리고 사회전체가 깨우치도록 계몽하고 교육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유교적 절대주의 교육관에서 벗어나야만 하고 집단주의, 연고주의, 외관주의, 형식주의를 떨쳐 교육에 관해서도 도덕성, 합리성을 도모하도록 스스로를 깨우치고 훈련해야 한다.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교육평등의 원칙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미분, 적분 같은 고등수학을 배울 수도 없고 또 배울 필요도 없다는 것, 모든 국민이 박사학위를 받을 수도 없고 또 받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교육병의 치유는 사회개혁이자 인간개혁이어야 한다.
장석정 /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