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들의 모임에서 한 기업인이 푸념했다. “불만이 가득해 사사건건 트집 잡는 직원, 쓸데없이 걱정만 많아 전전긍긍하는 직원, 늘 빈둥대며 밖에 나갈 기회만 엿보는 직원 때문에 요즘 골치 아파 죽겠어요.” 이 푸념을 들은 옆자리 사장이 그 직원들을 자신에게 넘겨 달라고 했다.
직장을 옮긴 세 직원은 다른 일을 맡게 됐다. 트집 잡는 직원은 품질관리를, 전전긍긍 직원은 보안업무를, 그리고 자꾸 밖으로 나돌려는 직원은 제품 홍보를 담당했다. 개성과 업무가 맞아 떨어지면서 능률과 성과도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은 물론이다.
와인용 포도밭을 가꾸는 농부들은 ‘적재적소’의 원리를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다. 적재적소의 원리는 ‘테르와’(Terroir)라는 프랑스 단어 속에 압축돼 있다. ‘테르와’는 포도밭의 토양과 자연환경, 그리고 포도 품종 간의 상호작용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한마디로 땅에 따라서 잘 자라는 포도 품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유럽의 농부들은 보르도에서는 카버네 소비뇽과 멀로를, 부르고뉴에서는 피노 누아를 재배하고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는 산지오제베를 심는다. 호주에서 가장 잘 되는 포도 품종은 시라즈이다. 보르도에서 피노 누아를 재배한다고 포도가 안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 수준의 와인은 기대할 수 없다. ‘테르와’에 가장 잘 맞는 품종을 심어야 최대의 수확과 최고의 와인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와인 전문가들은 흔히들 “와인의 세계에서는 개천에서 용나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플로리다 대학을 대학농구 정상으로 이끌었던 빌리 도노반 감독이 지난주 NBA 올랜도 매직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발표했다. 계약 조건은 5년간 총 2,750만달러. 대학 감독으로서는 뿌리치기 힘든 액수이다. 그런데 계약서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4일 도노반 감독은 NBA로 가지 않고 그냥 플로리다 대학에 남겠다고 말을 번복했다.
도노반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결정을 했다. 그가 NBA 감독으로 갔더라면 큰 돈은 만졌겠지만 성공할 확률은 별로 없었다. 대학농구와 프로농구는 ‘테르와’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농구는 아직 기량이 자라고 있는 미완의 선수들이 뛴다. 나이도 20세 전후로 어리다. 하지만 프로농구는 이미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뛰는 무대이다. 그런만큼 대학농구와 프로농구는 리더십과 전술·전략면에서 확연한 다른 유형의 지도자를 요구한다. 대학 감독은 치어리더형이 적합한 반면 프로세계에서는 냉정한 전략가형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프로에서 쓴 맛을 본 대학 감독은 한둘이 아니다. 켄터키를 대학정상에 올린 후 요란한 팡파레와 함께 NBA 보스턴 셀틱스 감독으로 옮겼던 릭 파티노는 프로에서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몇년 전 다시 루이빌대학 감독으로 돌아왔다.
LSU를 대학풋볼 최강으로 만든 후 프로팀 마이애미 돌핀스 감독으로 갔던 닉 세이반도 2년만에 다시 대학으로 복귀했다. 그가 마이애미에서 2시즌 동안 거둔 성적은 15승17패였다.
거꾸로 프로에서 죽을 쑤다가 대학에 와서 빛 본 감독들도 있는데 USC 풋볼팀의 피트 캐롤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뉴욕 제츠와 뉴잉글랜드 페이트리어츠에서 별 볼일 없는 감독이었던 캐롤은 2001년 USC를 맡은 후 명장 반열에 올랐다.
사람을 잘못 기용해 현재 낭패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CBS 이브닝 뉴스’이다. NBC의 인기 아침프로인 ‘투데이’를 15년 진행한 케이티 커릭을 지난해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브닝 뉴스 단독앵커로 내세웠던 CBS는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다른 방송사에 밀리고 있는 것은 물론 자체 시청률도 20년만의 최저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회생을 위한 여러 처방을 써보고 있지만 더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비관적 분위기가 팽배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방송인으로서 커릭의 위상도 말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초래됐을까. ‘테르와’를 고려치 않았기 때문이다. 커릭의 부드러운 미소와 ‘국민 누나’ 같은 푸근함은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가 정통 뉴스 진행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명랑소녀’형 여배우를 ‘B사감과 러브레터’의 근엄한 B사감으로 캐스팅 해서는 흥행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미스캐스팅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는 자리가 있는 법이다. 그 자리를 잘 찾아 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또 가장 빛날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은 현명한 인사이다. 이래저래 ‘만사’일 수도, 또 ‘망사’일 수도 있는 것이 사람 쓰는 일인 것 같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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