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일(우정공무원)
얼마 전 일이다. 긴요한 약속시간은 넘었는데 어렵게 찾았던 길을 무심결에 중간쯤 가다 보니 one way 길이 아닌가. 참으로 난감하면서 맥박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앗뿔사! 마주보는 편에서 차가 오지 않는가. 급히 유턴을 할 수 있는 노폭이 아니라 잠시 머뭇거리는 중에 다가온 차를 보니 경찰 순찰차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격이다. 이보다 더한 황당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수습이 잘 되어 체증이 풀린 적도 있다.미국을 외나무 다리라고 필자가 감히 비유한다면 이렇게 넓은 땅인데 쌩뚱맞는 소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퇴로가 없이 전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독신의 경우,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가족이 있는 사람도 해결책이 선뜻 보이지 않는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후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불법 혹은 탈법 등 경제사범으로 쫓기는
처지에서 마지막 은신처로 택해 재기의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 찾아온 이곳, 앞만 보고 나가야 하는 것이 마지막 외나무 다리를 걷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이민 와서 살고있던 김 모씨는 본국 상대로 수출입 무역과 부동산에 투자하여 경제적으로 기반을 이뤄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있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80년대 중반 시카고에 소재한 한인 대형마켓에서 본국에서 동업하던 정 모씨를 마주쳤다고 한다. 말을 잊은 채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와 김 모씨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문을 열었다.
사연인즉, 김 모씨는 당시 회사 자금 집행을 담당하던 중 회사 자금을 가지고 이민온 사람이고 이로 인해 얼마후 회사는 부도가 나서 정 모씨는 살고있는 집까지 차압당하고 빈 주먹이 된 후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동반, 미국에 와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김 모씨를 만난 것이다. 그러니 억장이 무너진 과거가 생각되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던 상황이었다.
그 후 김모씨는 사죄의 뜻에서 공금횡령 금액의 3배를 정모씨에게 주었으며 두 사람은 전보다 더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생존해 있어 익명 사용).그런가 하면 이곳 뉴욕에서도 몇년 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남이 있었다(필자가 두분을 알고 있고 이미 작고하여 실명을 밝힘).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주체세력은 민간정부가 들어서면 정권을 이양하고 원대복귀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권력은 마약보다 더한 것으로 집권을 계속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고 복귀를 주장한 현역들 중 육군의 한신장군, 해군의 남상휘 장군 및 김동하 장군(해병대)이 대표적이다. 이중 남제독에 얽힌 사연이다.
남제독은 유일한 한국 상륙함대 사령관으로 당시 5.16 세력의 회유나 협박에 굴하지 않고 군의 원대복귀를 계속 주장해 오던 중 짐작이라도 예상한듯 필리핀 슈빅만에 정박 후 이튿날 가방을 챙겨 단신 미국으로 출발했다. 당시 반대세력들은 가택연금 하였으나 바다 위에 떠있는 남제독은 어찌할 수 없어 부득이 체포하기 위해 양주, 양평, 화천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군 AID(군사정보대) 요원 양귀남(당시 상사)씨 일행이 밀명을 받고 신속히 필리핀 숙소를 덮쳤으나 이미 전날 출국으로 체포에 실패했다.
그 두사람이 뉴욕 퀸즈 한 지붕 밑에 살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연락이 되어 양씨가 남제독을 플러싱의 금강산 식당에서 해후한 것은 수배자와 수사관이 미국이란 넓은 땅이지만 한인사회란 독목교에서 감격적으로 만난 것이다.늦은 시각까지 정담을 나누다가 재회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그 뒤 양씨는 건강검진을 위해 브롱스 종합병원을 찾았다가 간암으로 입원후 퇴원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으며 5.16 이후 한국을 방문치 못했던 남제독도 노환으로 양씨를 만난 2~3년 후 자택에서 영면했으니 이 또한 매우 슬프고 아이러니칼한 사연이다.
이민 온 1세들은 수고와 고통이 따르지만 제 2의 삶의 터전으로 가꾸고 떳떳하게 후세들에게 물려줄 미국은 이제 one way가 아닌 Two way의 길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인들 상호간에 질시와 욕심이 사라지고 양보와 화해의 한인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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