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국가, 어떻게 봐야 하나’- 얼마 전 한 한국 내 신문의 사설 제목이다.
한국 선박이 중국 선박에 의해 침몰됐다. 그런데 중국은 하품만 한다. 그리고는 뒤늦게 사고해역이 영해라는 엉뚱한 주장과 함께 한국의 구조선 파견을 방해하고 나선다. 이런 나라가 과연 21세기 문명세계의 일원일 수 있는지,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에서도 유행의 화두다. 경제를 얘기한다. 국제 정세를 조망한다. 우주경쟁 시대를 논한다. 이 모든 것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중국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일본에도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거대중국’ 견제의 대항마로서.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게 일전의 월스트릿 저널 서평란 내용이다. ‘중국은 허약한 수퍼 파워다’- ‘겉모습만 보고 일본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런 주장들이 제시돼서다.
중국은 왜 허약한 수퍼 파워인가. 실전파라고 해야 하나.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일선에서 중국문제를 다뤘으니까. 그런 수잔 셔크는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천안문사태의 내상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그 처방책으로 제시된 게 중화민족주의다. 그게 그러나 오늘날에는 프랑켄슈타인이 되어버렸다.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민주화 시위는 천안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132개 도시에서 6주째 이어졌다. 사태를 초조히 지켜보던 중국 공산당은 결국 초강경 조치를 내렸다. 유혈진압이다. 무력을 동원해 공산체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 시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국적인 농민 소요사태다. 민족주의도 화근 덩어리다. 당초 국내위기를 호도하기 위해 고의로 부추겼다. 그것이 이제는 공산 이데올로기를 제친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 공산체제는 내셔널리즘이라는 호랑이의 등을 탄 격으로, 자칫 중화민족주의에 상처를 주는 액션이 나올 경우 체제 전복의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그녀가 보는 중국 지도자들은 임박한 파멸에 두려워 떠는 존재들이다. 바로 이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경고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래로부터 치솟는 내셔널리즘에 떠밀려 럭비공 튀듯이 과민반응을 할 수도 있어서다.
행보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거대 중국’은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다.
항상 고분고분하다. 수동적이다. 게다가 평화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만 일본을 봐서는 안 된다. 케네스 파일의 경고다. 그는 ‘뜨는 일본’이란 신저를 통해 일본이 지닌 다른 얼굴을 파헤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볼 때 보편타당성의 원칙이나 이상(ideal)에 따라 국제적 역할을 수행한 적이 없다. 이득이 된다고 판단되면 하루아침 그 동안의 전통을 버릴 수 있는 나라다.
명치유신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군국주의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보았다. 30년대에 풍미한 파시즘을 살 길로 보고 재빨리 변신을 한 결과 대두된 게 일본 군국주의라는 것이다. 전후 평화주의 일본 탄생도 어찌 보면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일본은 전환기를 맞아 또 한 차례 변신을 꾀하고 있다. 군비를 부쩍 증강했다. 미국의 동맹으로 바짝 다가섰다. 헌법 개정을 서두른다. 정상국가, 다시 말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본을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한국은 그러면 어떻게 비치고 있나. ‘아메리칸 시큐리티 프로젝트’란 진보계열 싱크탱크가 근사치에 가까운 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연구기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미국인은 36%다. 반면 부정적으로 보는 미국인은 48%다.
무엇을 말하나. 한국을 중국 바라보듯 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의 경우 부정 52%, 긍정 37%). 말하자면 더 이상 동맹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얘기를 다시 중국과 일본으로 돌리자. 이 두 나라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파워다. ‘세계의 중국’ ‘세계의 일본’이 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두 나라가 동시에 글로벌한 파워로 병립한 적이 없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 동북아 정세를 적지 않은 관측통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다른 게 아니다. 동북아 안보지형은 살벌한 모양새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는 것처럼.
그런데도 한국은 태평성세다. 대선판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그렇다. 북한 핵문제는 아예 거론도 안 된다. 밖은 쳐다보지 않는다. 한가한 얘기뿐, 위기의식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이라는 국가, 어떻게 봐야 하나’- 한번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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