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이 어눌했던 한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믿거나 말거나’ 일화 한 가지. 그가 제주도를 찾아 이 지역을 ‘관광단지’로 키우겠다는 정책을 밝히는 연설을 했다. “나는 제주도를 세계적인 강간단지로 만들 것을 약속합니다.” 연설이 끝난 후 발음 듣기가 민망했던 외무장관이 대통령에게 귓속말을 했다. “각하, 강간이 아니라 관광입니다.” ‘외무장관’ 지적에 기분이 나빠진 대통령이 한마디 쏘아붙였다. “애무장관은 애무나 열심히 하세요.”
국가 지도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발음이 어눌하건 혹은 똑 부러지건 관계없이 국민의 관심대상이 된다. 혀가 잘 안돌아 나오는 발음이야 그래도 애교로 봐줄 수 있다지만 문제는 메시지가 부적절한 경우이다. 뜻대로 안된다고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 지도자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리더는 구성원들과 말로 소통한다. 아주 작은 조직이야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조직이 커지면 이것이 불가능해 진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말은 유권자와 교감하는 가장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말을 많이 하고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종용받게 된다. 무려 34년간 연방하원의원을 지낸 폴 오닐 전 하원의장은 “정치인의 말은 정치의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자연 실수도 많아지는 법. 그래서 유독 정치인들의 말실수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특히 지난 1년은 ‘설화의 계절’이었다고 할 만하다. 2004년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잔 케리는 지난 가을 한 학교강연에서 “공부 열심히 해라. 숙제도 잘하고 똑똑해 지려면 노력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라크에 처박혀 고생하게 된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원고를 잘못 읽은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지에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은 다음이었다.
그러나 말실수에 관한 한 부시 대통령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얼마 전 영국 여왕 앞에서도 실수를 했던 부시는 문장의 앞뒤가 안 맞는 비문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두 번이야 인간적 면모라고 넘어갈 수 있다지만 너무 반복이 되다 보면 리더로서 신뢰도에 크게 금이 갈수 밖에 없다.
어디 미국뿐인가. 한국 대선전에 나선 한 유력후보가 연일 비하성 말실수를 저질러 그의 이어지는 실언이 단순한 ‘실수’인가 아니면 ‘체질’인가를 놓고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리더의 말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그만큼 많은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리더의 말이 부박해서는 안 된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언의 경솔함은 리더십의 경솔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 것과 같은 진중함이 말하는 태도에 배어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또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잘못 해석된 메시지는 국가나 조직에 엉뚱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1851년 프랑스 학살이 대표적인 예이다. 나폴레온 3세 당시 폭도로 변한 민중들이 궁궐로 밀려오자 황실호위대 부관이 호위대장 상아루노 백작에게 급히 보고를 했다. 지병인 천식으로 고생하던 백작은 보고를 받는 도중 심한 기침이 나자 ‘마 사크레 투’(나의 지독한 기침)라고 불평했다. 부관은 이 말을 ‘마사크레 투’(다 죽여 버려)로 알아듣고 바로 뛰어나가 민중에 발포를 시작했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한 비극이다.
또 리더의 말에는 단단하게 속이 밴 도토리처럼 꽉 찬 맛이 있어야 한다. 대선에 나선 후보가 구체적인 철학과 정책적 입장을 세일스 하기보다 “조국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 “오직 국민이 잘되는 것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는 등 거대담론과 공허한 수사에만 치중하는 것 또한 21세기형 리더로서는 미덥지 않다. 프랑스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꿈꾸며 이미지 선거에 치중하다 “내실이 없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루아얄의 실패는 타산지석이 될 듯싶다.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속이 꽉 찬 메시지를 품위 있는, 그러면서도 친근한 방법으로 국민들과 나눴다는 사실이다. 루즈벨트가 그랬고 케네디가 그러했으며 드골 역시 그런 지도자였다. 한국의 대선후보들에게서는 이런 자질이 잘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다혈질임에도 재임시절 누구보다 말조심에 신경을 썼던 사람이다. 그는 퇴임 후 1964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무서운 눈빛, 거만한 몸짓 하나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무서운 영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장삼이사’의 입놀림과 지도자가 뱉는 말 한마디는 영향과 결과에 있어 같을 수 없다. 당신이 조직의 리더라면 ‘입조심’에 대한 트루먼의 조언을 머릿속 깊이 새겨 둘 필요가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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