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형(아팔래치안대학 명예교수)
입법, 사법, 행정부에 더하여 언론계를 제 4부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언론의 중요성과 힘과 영향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언론의 중요한 역할과 책임 중의 하나가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다. 현실 생활에 바쁜 일반 국민들은 그들의 대표자들과 그들의 하인들인 정부 관리들이 일을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할 시간과 능력이 없다. 우리를 대신해서 이런 감시자의 일을 언론이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4년2개월 전에 시작한 이라크 선제공격과 관련하여 미국 주류 유력 언론들은 이런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전쟁 PR 장단에 춤을 쳐 준 시녀자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25일 방영된 90분간의 PBS ‘빌 모이스 저널’은 2003년 전쟁 시작하기 전 미국의 유력 언론들이 어떻게 그들의 정부 감시자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여론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FOX-TV, CNN-TV,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BS(주로 60분-60 Minutes-프로그램) 등이 그들 자신의 독자적이고 객관적인 조사와 분석을 하지 못하고 백악관과 국방성, 국무성 관리들의 장단에 호응, 감시자의 기능을 상실했었다고 모이어스는 해설했다.
예를 들면, 이라크 망명 정치인 챨라비가 실제와 다른 정보를 주는 사기꾼인데도 미국정부는 그를 믿고 막대한 지원비를 주었다. 또 그와 연결된 많은 이라크 망명자들이 주는 엉터리 정보들을 그대로 믿고 언론인들에게 사실처럼 퍼뜨려 여론을 몰아갔다.또 정부와 백악관 당국은 9.11 사태의 주모자인 아타가 사전에 후세인 정보원 등과 만나 9.11을 모의했다고 언론에 전달하여 언론들이 그대로 보도하게 만들었다.
대체로 당시 언론은 정부의 가짜 정보도 그대로 믿고 보도했다. 또 후세인은 UN의 핵사찰 팀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에도 계속해서 핵무기 생산을 준비했다고 정부가 언론에 퍼뜨려 언론은 다른 소스의 확인도 없이 이런 가짜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다. 또 후세인은 이미 생화학 물질 대량살상무기도 트럭 속에 감추고 있다는 엉터리 정보를 언론에 주어 그대로 보도하게 만들었다.백악관과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지 2개월 정도 지난 2001년 늦가을 이미 이라크 공격 방침을 세우고 주력부대를 중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주로 부통령, 국방장관, 국방차관(현재 세계은행 총재인 울포위츠) 등 신보수 강경파들이 주도한 미국정책이었다. 이어서 이를 위한 여론 형성을 위해 전쟁에 부정적인 정보는 무시하고 언론을 교묘히 이용하여 그들의 목적을 이루었다. 의회를 요리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계에서는 2급으로 분류되는 나이트·뤼더(Knight-Ridder)그룹의 국가안보 취재팀은 이런 백악관과 정부의 엉터리 정보와 사전계획을 탐지하고 선제 공격의 부당함을 보도했다. 불행히도 이들의 보도는 제대로 발표되지 못하고 대개 무시되고 말았다.30여개의 신문을 갖고 있는 큰 신문 그룹이었으나 대부분의 소속 신문들은 그들 특별취재팀의 보도 대신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지의 칼럼이나 뉴스 서비스를 보도했다(나이트·뤼더그룹은 작년 맥클렛치 그룹에 매각됐다)이런 언론의 보도 경향, 감시자 역할의 상실은 당시 미국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생각해서 거론할 수도 있다. 애국심 발로가 지배적인 미덕이었고, 9.11의 충격과 후유증으로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보복 심리가 넘치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 어긋나는 보도는 피하고 싶은 것이 언론인들의 무의식 중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인들의 기본 사명은 진실 보도와 객관성과 독립성을 지키면서 국민의 이익과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명은 때로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와 배치될 수도 있다.하여튼, 4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전쟁을 보면서, 이에 따른 엄청난 인명 손실과 국가 재
정의 낭비를 생각하면서 전쟁시작 전 미국 언론 역할의 심각한 실패를 되새기게 된다. 당시의 미국 여론은 70~80%가 이라크 선제 공격을 찬성했다. 그러나 4월 말 나온 여론조사는 불과 27%만이 전쟁 지지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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