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분오열 범여권 통합위한 뒷심싣기 관측
우리.민주 정반대 해석..한 `불이익’ 경계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송수경 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이 19일 공교롭게도 범여권의 대통합을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동시에 내놓아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전.현직 대통령은 범여권의 `차기 주자’를 대놓고 점지하거나 특정 정당을 노골적으로 거드는 모습을 피해가면서 연말 대선을 앞두고 사실상 범여권의 대동단결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 정치권의 제정파가 `독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노 대통령은 광주 무등산 산행에 동행한 광주.전남지역 시민단체 대표들과 시민, 노사모 회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대세를 잃는 정치를 하면 안된다며 작년 말 나는 지역주의로 돌아가는 통합은 적절치 않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그것이 대의이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우리당이 분열되고 깨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도 같은 날 독일 방문을 마치고 귀국,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환영객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좌우간 내가 바라는 것 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을 해야 한다며 국민이 바라는 것은 양당제도일 것이다. 대선이 실시되는 금년 후반기에 가면 양당대결로 압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전.현직 대통령의 발언은 민주당 박상천(朴相千) 대표의 `특정인사 배제론’ 이후 대통합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자칫 범여권 세력이 산산조각으로 파편화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각별한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대통합의 필요성을 인정 또는 강조했다는 점에서 범여권 통합주체들에게 주는 심리적인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주장의 접근방식과 강조점에는 다소 차이를 두고 있다.
노 대통령의 경우 지역주의 회귀는 안된다는 것이 대의지만 현 시점에서 열린우리당이 추진중인 대통합이 불가피하다면 대세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데 비해, 김 전 대통령은 대통합이 지역주의 회귀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통합과 양당체제 복원을 명제로 내세운 점이다.
이와 관련, 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노 대통령은 대통합에 대해 `현실주의적 수용론’에 가깝고, 김 전 대통령은 `적극적인 대통합론’으로 볼 수 있어 발언의 뉘앙스와 배경은 좀 다르다며 하지만 분명한 교집합이 있고, 현실적으로 같은 날 발언이 나와서 흐름을 잡아주고 가닥을 정리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발언이 꺼져가는 범여권 대통합의 불씨를 살리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범여권 각 정파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았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DJ의 발언이 민주당 박상천 대표의 `소(小)통합’ 추진을 비판한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고,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이 편의적으로 DJ의 발언을 이용하고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우리당 정세균(丁世均)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평화민주개혁세력이 분열하지 말고 대통합해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당이 추진해온 대통합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의 말씀 역시 우리당의 대통합 추진에 대해 재차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당 서혜석(徐惠錫) 대변인은 전.현직 대통령과 국민의 요구가 대통합에 있는 것이 확인된 만큼 박상천 대표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면서 평화민주개혁세력을 분열시키는 특정인사 배제론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모든 정치는 국민이 바라는 대로 해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지극히 원론적인 말인데 이것을 왜곡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민주당이 추진하는 중도개혁통합 정당 건설은 국민을 보고 정치하는 것이며 현재의 좌우이념 대립형의 한국정당 구조를 중도와 보수가 양립하는 구도로 바꿔서 국민통합의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는 열린우리당 사수의지를 강하게 밝히고 바로 다음날 좀 다른 말을 했는데 5.18 기념사가 노 대통령의 진심이라며 국민을 보고 정치하라는 것은 DJ의 지론인데 이를 놓고 국정실패 책임자까지 통합시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과의 본격적인 `소통합’ 협상을 앞두고 있는 통합신당의 양형일(梁亨一) 대변인은 두 분 말씀에 다 공감한다면서도 민주당과 통합신당이 소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이를 단초로 대통합을 열겠다는 것이지 소통합에 만족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범여권 통합논의를 촉발해 대선구도를 뒤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경계심을 보였다.
한나라당 나경원(羅卿援)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노 대통령의 `대세 수용론’에 대해 노 대통령이 드디어 지역주의에 굴복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협상에 숨통을 터주기 위한 책략으로 풀이된다고 비판했다.
한편 우리당 대선 예비주자인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이 5.18 기념사에서 대통합을 `지역주의 회귀 경향’으로 비판한 데 대해 반박했다.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의 지역주의 비판 그 자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지만, 지역주의를 보는 시각과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노 대통령은 호남의 지역주의와 영남의 그것을 등가적인 것으로 싸잡아 비판해왔지만, 호남의 그것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차별에 반대하는 저항적이며 개혁적이고 파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장은 또 통합신당을 만들려는 것은 평화와 개혁을 지향하며 수구에 반대하는 제반 세력을 복원하려는 작업이라며 통합신당은 오히려 호남과 충청을 넘어서는, 그래서 패권적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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