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계절 중 가장 생명력이 충만하고 꽃이 만발한 화려한 계절이다. 그래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해놓고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기리면서 여러 행사를 개최하며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는 지난 13일 어머니날에 이어 6월에는 아버지날도 정해 놓고 기린다. 이렇듯 가정에 대한 행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사회가 가정에 대한 관심과 역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근대사회를 일컬어 ‘가정의 위기시대’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요즘 시대는 집(house)은 있지만 가정(home)은 없는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가정의 개념이 바뀌면서 가치관도 달라져 전통적으로 여겨왔던 결혼에 대한 개념이나 효의 사상에 변화가 도래했다. 여성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남녀 간의 역할과 분담에도 변화가 생겼다. 신세대는 결혼 자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마음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혼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거기다가 자녀양육의 방식에까지 변화가 왔다. 또한 물질문명 시대로 변하면서 물질을 모든 가치 위에 두게 되어 모든 가치가 물질에 종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정은 돈을 벌기 위한 곳으로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일터에서 돌아와 먹고 잠자고 일하러 가는 개미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사이버 공간이 생기면서 자녀들과의 대화나 교제의 시간은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역기능 속에서도 가정은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와 사랑과 헌신의 중요한 장소이다.
어느 누군가는 “가정은 세계와 역사의 중심으로 현대와 미래에 사랑의 혁명을 일으키는 열쇠”라고 말했다. 만일 사랑이란 혁명이 존재하려면 사랑이 영양분을 얻고 성장해야 하는데 바로 그 장소는 가정이다. 가정은 현대사회 속의 허다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 압력을 이기기 위한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인간회복과 구원의 장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은 사랑과 회복의 장소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간이나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와 사귐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대화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을 나누는 촉매이다.
가정에 대한 신세대는 이제 결혼자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특히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시간을 서로 맞추어 내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떻게든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우리들의 삶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이민사회는 거기서 더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인 안정과 관계없이, 이민의 연륜이 깊으면 깊은 대로, 또 갓 이민 온 가정은 가정대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는 집이 없고, 상처가 없는 집이 거의 없다. 가족이 따로 따로, 군대용어로 말하면 사분오열이 되고 보니 부부는 부부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모두가 다 제각각이다. 탈 가정, 탈 가족으로 공동체라는 느낌이 무색한 21세기 다원주의 회색시대 사회의 모습이다.
이것은 기존의 가족, 이웃, 공동체 개념이 사라진 어찌 보면 우리 이민사회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우리 인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선 현대가정에 기본적으로 있어야할 가족간의 사랑과 대화, 그리고 서로간의 관심부족으로 사막화되어 감으로써 생긴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민 가정은 어느 정도 잘되고 안정된 가정도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암울하다.
신분상의 문제로 언제 쫓겨날지, 또 언제 신분이 해결될지, 무슨 일을 하려 해도 마음대로 하지 어렵고 게다가 경기마저 안 좋으니 열심히 죽어라 일을 해도 보장된 삶이 없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문제가 나서 해결하면 또 저런 문제가 나오고 마치 타이어 빵꾸 떼듯 살다 보면 결국 우리 가정의 안정은 요원한 일이 아닐 런지... 우리 사회에, 우리 가정에 항구적인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심지어 가족 간에 서로 죽이고 죽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버니지아 텍의 조승희군 사건도 어찌 보면 가족간에 대화의 단절이 가져다준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화창하고 꽃내음이 싱그러운 5월, 무엇보다도 우리 가정에 먼저 사랑과 대화의 향기가 넘친다면 이런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주영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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