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이라고 한다, 200만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수치는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굶어서 죽은 것이다.
전시도 아니다. 평화 시기다. 20세기의 끝자락에, 그것도 전시도 아닌 평화 시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마냥 방치된 것이다. 최대의‘블랙 미스터리’다. 아니, 그보다는 오늘날 시대의 가장 참혹한 스토리라는 정의가 맞을지 모른다.‘홀로코스트’에 비교될 정도의.
북한의 대기근 참상을 말하는 것이다. 전체주의 체제, 그러니까 중앙통제 경제체제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정부가, 그 체제가 전 인민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는 마당에. 잇단 대홍수로 흉작이 든 여파다. 그 공식적 설명이다.
“전체 인구의 3~4%가 굶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 최소 100만 이상이다. 실감이 안 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1,500만명이 굶어 죽은 것이다.”
북한의 대기근 참상을 밝히는 새로운 책이 나왔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스티븐 해거드와 마커스 놀런드의 공저인‘북한의 기근’이다. 이 책은 세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섹션은 기근의 연원을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섹션은 북한 같이 ‘경색된 체제’하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밝혔다. 세 번째 섹션은 기근의 후유증이다.
왜 기근이 일어났나. 이 책의 저자들은 전혀 다른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김정일 체제다. 그 체제의 배급 시스템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근은 그 전부터 시작됐다. 80년대 말 소련 붕괴와 함께. 소련의 지원이 끊기면서 그 때부터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상황이 점차 악화되면서 90년대 중반에는 배급에 차질이 생겼다. 물자가 모자란다. 그 와중에도 특수층 거주지역인 평양에 물자가 몰렸다. 북한의 2등 시민들에게 재난의 서곡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물자는 더욱 한 곳으로만 쏠린다. 그러면서 배급 시스템은 작동이 안 된다. 일부지역의 경우 곡물 배급마저 끊긴 것이다.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일 체제가 정상적 국가였다면 대기근은 막을 수도 있었다. 북한에 풍부한 광물질 등을 내다 팔아 식량을 사오면 되는 것이니까. 그 간단한 게 안 됐다. 극도로 폐쇄적인 수령 절대주의 체제가 그걸 막은 것이다.
김일성-정일 부자는 씨앗을 심는 간격을 지시할 정도로 열심히 현장지도에 나섰다. 결과는 그러나 대흉작이었다. 극도의 두려움 속에 관리들은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간다. 그래도 외부에 사정을 알리지 않았다. 개방에 따른 내부의 동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김정일 체제는 마침내 기근사태를 시인한다.
그게 1995년의 상황으로, 사태가 너무 급박해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0년간 식량 중심의 외부 원조는 23억달러에 이르게 된다.
이후 북한에서 전해진 스토리는 그러나 더 끔찍하다. 외부의 식량 원조를 충성도에 따라 배급했다. 당성이 약한 주민은 죽도록 방치한 것이다. 기근은 외부 원조로 부족분을 채우면 해결될 문제였다. 김정일 체제는 그러나 굶어 죽어가는 인민을 인질로 잡았다.
국제식량기구 등 서방 NGO들의 구조작업 길목 길목을 차단하고 돈을 뜯어낸다. 아예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식으로. 그리고 투명성 제로의 상황에서 많은 원조를 빼돌렸다.
10년간 쏟아 부어진 23억달러의 구호금 중 30%가 전용돼 김정일과 측근의 사금고에 들어간 것으로 놀런드 등은 추정하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선포된 게 선군정책이다. 1999년 수많은 북한의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40대의 미그기를 사들인 것이다.
해거드와 놀런드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대기근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인민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오직 수령만을 떠받드는 체제가 불러온 인재(人災)다. 이 끔찍한 사태의 책임은 김정일 체제에 있다.”
그리고 내린 논고는 그 체제가 저지른 이 죄악은 반(反)인류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너도 간다. 나도 간다. 평양으로. 열린 우리당의 평양순례가 줄을 잇는다. 그들뿐이 아니다. 손학규도 갔다. 그 명분이 자못 거창해 보인다. 저마다 ‘평화의 이름’을 내걸어서다. 그 속내야 뻔히 보이지만.
여기서 한번 상상을 해본다. 그 체제가 결국 무너졌다. 새로운 사실이, 더 끔찍한 사실이 밝혀진다. 체제의 희생자 수가 그동안의 상상을 절한다는 사실이다. 나치 히틀러가 패망했을 때 그들이 저지른 죄과가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게 드러난 것 같이.
왜 그들은 김정일을 못 만나 안달인가. 이 역시 블랙 미스터리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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